[김필남의 영화세상] 인간이 착각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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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툰드라의 자연 파괴하려는 세력과
이에 맞서 ‘붉은곰’ 찾아 나선 남매
눈·불·오로라 구현 장인 정신 돋봬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스틸 컷. KAFA 제공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스틸 컷. KAFA 제공

응원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보고 있는 것 자체로 경이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작품이 있다. 69분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박재범 감독이 들인 시간은 장장 3년 3개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3차원에 실제 인형과 세트를 제작하고 이를 한 컷씩 카메라로 촬영해서 연결해 색다른 입체감과 사실감을 보여주는데, ‘엄마의 땅’이 바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한다. 사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시간도 품도 많이 들어 요즘엔 많이 작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감독은 세트와 캐릭터를 손수 만드는 등 애니메이션에 신비로운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눈 덮인 툰드라를 배경으로 하는 ‘엄마의 땅’은 유목 민족 예이츠 부족의 소녀 ‘그리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그리샤는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사춘기의 예민함과 남동생과 다투는 모습까지 평범하고 귀여운 소녀다. 다만 소녀가 살고 있는 마을의 하루는 우리가 사는 하루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순록의 피와 살을 나누어 먹으며 자연과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이츠 부족에게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보다 두려운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고 숲(자연)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연합군 소속 ‘블라디미르’와 한때 부족민이었으나 어떤 사건으로 연합군을 돕는 ‘바자크’의 등장이다. 툰드라 땅은 이미 연합군의 영토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부족은 땅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블라디미르는 부족에게 국가와 민족,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땅을 떠나라고 회유와 강압을 이어나간다. 그는 마치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부족민들에게 땅은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이며, 자연을 지배하는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샤의 엄마가 병으로 쓰러지게 되면서 아빠가 도시로 약을 구하러 간 사이, 그리샤와 남동생 ‘꼴랴’는 땅의 정령이자 주인인 ‘붉은곰’만이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믿으며 북쪽 땅 끝으로 모험을 떠난다. 남매는 부모에게 배운 대로 순록 썰매를 타고 숲의 나무를 해치지 않으며 자신들이 지나갈 수 있는 만큼의 길을 만든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이 주는 변화의 징후들을 알아차리려 노력한다. 늑대에게 쫒기는 위험천만한 사고도 있었지만 남매는 조용히 자연 속에 융화되어 가는 듯 보인다.

예이츠 부족은 붉은곰을 숲의 주인이면서 신성한 존재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죽음과 생명을 관장하는 존재이기에 또한 두려운 대상이기도 한 붉은곰.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 영적인 존재가 바로 붉은곰인 것이다. 그리고 붉은곰을 처단해야 부족민들을 회유할 수 있다고 믿는 블라디미르와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지 않았던 붉은곰에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는 바자크의 욕망은 붉은곰, 즉 자연을 파괴하는 욕망으로 나아간다. 자연을 훼손하려는 자들과 이를 지켜내려는 자들의 욕망이 충돌하며 영화는 한 편의 흥미진진한 모험극을 완성한다. ‘엄마의 땅’은 어찌 보면 단순한 서사로 진행되는 모험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리데기 설화와 이국 땅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조합은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혹독한 추위를 표현하는 눈과 물, 불과 오로라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뭉클함이 전해지는데, 이것들은 천이나 스티로폼 등으로 감독이 손수 제작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에서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건 과찬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물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다가오는 겨울,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기에 좋은 따듯하고 우직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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