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마고할미·노고할미…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의 할매신을 만나다/김경희

영도할매, 마고할미, 설문대할망, 정견모주, 노고할미, 삼신할매, 미륵할미, 개양할미, 영등할미, 마구할매, 골맥이할매, 조왕할미 등은 우리의 할매신들이다. 그들은 전국 방방곡곡, 산과 바다와 나무, 마을, 집안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를 보듬었다.

〈한국의 할매신을 만나다〉는 우리가 그 존재를 잠시 망각한 산의 여신들, 바다의 여신들, 가택 여신들을 소개한다. 할매신들은 여성 특유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자식 같은 인간을 지키는 모성의 근원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머니로서의 신인 동시에 위엄을 지닌 신의 모습도 나타냈다.

부산의 영도할매가 그 본보기이다. 이 할매는 영도 봉래산 정상 표지석 바로 뒤쪽에서 치마폭을 둥글게 펴고 넉넉히 앉아 있는 형상이다. 지은이는 이 할매가 영도를 떠나고자 하는 이들을 벌한다는 항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 일제강점기 때 재산을 가지고 영도를 떠나는 사람들을 잡아두기 위한 일본 관군들의 간계라는 말을 함께 소개하는 걸 잊지 않는다. 저자는 인자함에 더해 사람들에게 ‘단디하라고’ 충고하는 영도할매의 음성을 직접 들은 듯 전한다.

세상을 만들고 사람을 만든 우리나라 창세신화 중 하나인 거인 여신 마고할미는 가장 널리 알려진 신이다. 지리산 노고단 명칭의 유래인 노고할미는 천왕봉의 성모천왕이자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로 변신한다.

우리 말 ‘미르’에서 연원한 미륵할미는 마을을 지켜주거나, 아픈 사람의 병을 고쳐 달라고 비는 이들을 도왔다. 가택신인 조왕할미는 부엌을 관장하며 불을 다스린다. 정화수 한 사발을 두고 기원을 드리는 대상이 바로 집안의 안녕을 수호하는 절대자인 이 조왕할미다. 이 책에서는 다른 여러 여신도 재미난 탄생 설화와 다양한 여성성으로 친근하게 다가선다.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고. 김경희 지음/공명/236쪽/1만 80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