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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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녀의 음색이 워낙 매혹적이고 곡의 선율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사를 자꾸 곱씹게 된다. 그런 노래 중 하나가 첫 번째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인 ‘담’이다. 가사의 시작은 이렇다.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닿지 않아요.’ 옆에 누가 있어도 외로워지는 순간에 이 노래를 들으면 폭풍 오열하기 십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애초에 담이 놓여 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처음부터 무방비 상태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가는 상처받기 일쑤일 테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미리 세워둔 담 너머로 상대를 탐색하고 차츰 마음을 열며 조금씩 담을 허물어가게 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함께했다고 해서 언제나 그 담이 모두 허물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와 나 사이에 더 높은 벽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더 이상 허물 수 없는 어떤 지점에서 멈추게 되기도 한다. 그 담 너머에 있는 상대가 오랜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혹은 가족일 때,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사랑했던 사람일 때, 우리는 견딜 수 없이 쓸쓸해지고 슬퍼진다. 노래의 가사처럼 ‘부서진 내 마음도 당신에겐 보이지 않’고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마냥 외로워져서 충동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최근 다시 읽은 이기호의 단편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를 보면 그런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이른 나이에 떠밀리듯 결혼을 한 주인공 김숙희는 남편의 지원으로 대학 공부도 하고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도 갖게 된다. 남편은 착하고 성실하며 늘 그녀를 위해주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남편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자신의 삶이 그녀로서는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숙희는 처음으로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비록 부도덕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남편에게 고백하는데, 남편은 그녀의 고백을 외면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꾸만 대화를 회피한다. 그러한 남편의 태도에 수치심을 느낀 김숙희는 마침내 그를 살해하게 되는데, 이야기 전개가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대화 단절과 소통 부재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소설적 상징으로서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와 같은 단절과 불통이 당사자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비록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의 상처와 파국도 결코 만만치 않으니까 말이다.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 공간에 돌연 가벽이 설치되고 약식 회견도 일방적으로 중단되었다.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불미스러운 사태’라는 것은 아마도 지난 18일 도어스테핑 상황을 의미할 것이다. 그날 대통령은 특정 언론사가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다고 말했고, 그 언론사의 기자가 “무엇이 악의적이었냐”고 묻자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대통령실 참모와 기자 사이에서 언쟁이 벌어졌고, 그 사건을 계기로 가벽이 설치된 것이다.

벽을 세운 그 사람이 나의 오랜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아니고,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사람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 마음이 외로워지고 쓸쓸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을 향해 쓴소리를 던지는 이들을 배제하며 담을 쌓는 국가지도자의 모습이 걱정스럽기는 하다. 국정 운영 책임자와 국민 사이의 단절과 불통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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