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리의 묘념묘상] 서로 다른 우리의 시간
사회부 기자
며칠 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응답하라 1998’. 24년 전 제주도 가족여행을 재연하는 것이 콘셉트였습니다. 당시 입은 옷과 최대한 비슷한 옷을 입고 그 장소를 찾아가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로 했죠.
1998년 꼬마였던 저는 옷을 다시 사야 했습니다. 그 시절에 입던 옷은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남아 있다고 한들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입을 수도 없었을 테죠. 아버지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그때 입은 니트를 찾으셨습니다. 그 시절과 체형도 변화가 없어서 똑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 위해 20년이 더 지난 사진을 여러 번 들여다봤습니다. 사진을 한참 동안 보시던 부모님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며 지난 시간을 되짚으셨습니다. 제 기억에는 없는 부분까지 부모님은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어느새 흘러가 버린 24년의 세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유치원 꼬마가 사회인이 되기까지의 긴 시간이었습니다. 반면, 부모님에게는 그 세월이 쏜살처럼 짧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품 안에 쏙 안기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는데, 그 시절이 아직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하시다고요. ‘시간이 빠르다’는 말이 어릴 땐 참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루, 한 달, 일 년이 어느새 지나버린 걸 보면 말이죠.
사람의 시간도 이렇게 빠른데, 수명이 15~20년인 고양이의 시간은 얼마나 빠를까요. 흔히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보다 4배 더 빠르다고 합니다. 7살이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노화가 시작되고, 11살이 넘으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노년기에 건강 관리를 잘하면 20살 넘게도 살 수 있다고 하죠. 반려동물의 나이가 20살이 넘으면 대학생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내 반려동물이 대학생이 되길 바랍니다. 대학원생이 될 때까지 함께 있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저의 반려묘 ‘우주’는 <부산일보> 편집국으로 올 때부터 나이가 많았습니다. 7살이었으니, 노화가 시작될 시기였죠. 우주를 입양하고 1년이 또 순식간에 지났습니다. 우주는 이제 곧 9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평소엔 나이가 많다는 게 느껴지지 않지만, 사냥놀이를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거나 너무 오래 잠을 잘 때는 순간 현실을 깨닫습니다.
우리에겐 얼마의 시간이 남은 걸까요. 하루가 지나가는 게 아깝게만 느껴집니다.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