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게임을 연주하다, 음악을 게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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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22 행사 장면. 부산일보DB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22 행사 장면. 부산일보DB

튀르키예의 에페소스 유적지에서 발견된 대리석 기둥에는 그리스 노래가 새겨져 있다. 〈세이킬로스의 비문〉이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그대 결코 슬퍼 말라. 인생은 찰나와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하네.” 현재의 삶을 예찬하는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는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인기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은 이 노래를 편곡하여 그리스 문명의 테마곡으로 삼았다. 2천년 전 노래의 귀환이다.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22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3년 만에 완전 대면으로 전환하면서 게임팬 18만 명이 부산 벡스코를 찾았다. 온라인으로 진행한 지스타 TV 시청자 수도 97만 명에 이른단다. 새로운 영지를 찾아나선 모험원정대일까. 영화의 5배, 음악의 9배에 달하는 게임산업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게임사 넥슨, 넷마블, 카카오게임즈가 신작을 선보였다. 이전과 달리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시연 기회를 확대하여 유저들과의 소통에 집중했다. 게임의 본질이 즐기는 행위 자체에 있는 까닭이다.

1990년대 일본에서 오케스트라가 게임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닌텐도 게임 기반이다. 게임음악 콘서트를 본격적으로 프로덕션한 이는 토마스 뵈커다. 2003년 라이프치히에서 시작하여 세계 전역으로 확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음악 콘서트가 인기다. 지난 6월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로스트아크 콘서트는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매진되었다. 대기자가 5만명을 넘었다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게임음악은 게임의 배경음악이거나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다. 아름다운 선율로 배경과 서사를 강화하고, 긴장감 넘치는 리듬은 전투에 몰입하도록 한다. 테마곡은 캐릭터의 특성과 운명을 오롯이 드러내며, 웅장한 사운드는 모험심을 추동하기에 충분하다. 음악은 게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클래식음악과 게임음악은 어떻게 다를까. 클래식음악은 음악 자체가 목적이다. 악보는 곧 무언의 메시지다. 듣는이에게 가 닿는 형상과 깊이는 모두 다르다. 게임음악의 본질은 음악이 아니라 게임이다.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뮤지컬과 재즈, 헤비메탈 양식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대중적인 리듬과 듣기 좋은 선율로 게임서사를 단장한다. 그런 까닭에 악보보다는 스토리와 배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지향점이 다른 셈이다. 게임음악은 이미 우리 시대의 클래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음악이 게임이 될 수는 없을까? 게임을 하는 것처럼 관객과 소통하고 감응하는 것 말이다. ‘로스트아크’에서 바훈투르와 위대한 성 네리아가 노래한다. “용광로를 지펴라, 망치를 꺼내라. 즐기면 돼, 심각해지지 말고.” 〈로맨틱 웨폰〉의 한 구절이다. 이 시대, 심각함을 물리치고 그저 즐기는 음악의 용광로를 지필 수 있을까. 음악은 낭만적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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