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꿈이 이뤄지는 창업도시 부산
논설실장
고만고만한 부산의 대표 기업
국내 100대 기업 안에도 없어
지방소멸 웅변하는 바로미터
아시아 창업·지산학 엑스포 눈길
지역 상생 발전의 모멘텀 기대
스타트업 키워 지역 경제 살려야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이 어디인가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부산의 모든 것을 궁금해한다. 최근에 만난 한 외교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산의 이모저모에 대해 질문을 쏟아붓다가 이윽고 경제 문제에 다다랐다. ‘부산 대표 기업’을 묻자 말문이 잠깐 막혔다. 언뜻 떠오르는 기업이 없었던 데다 단답형 질문에 굳이 특정 기업 몇을 꼽았다가는 되레 제2의 도시 부산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서였다.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은행, 에스엠상선, 에이치제이중공업, 창신아이엔씨, 서원유통, 하이투자증권, 성우하이텍, 대한제강, 디지비생명보험. 부산상공회의소가 한국평가데이터 신용평가사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자료를 활용해 2021년 결산 매출액 기준으로 지난 9월 발표한 부산의 10대 기업 순이다. 부산 사람은 물론이고 일반인의 귀와 눈에도 낯설 터인데 외국인에게는 더할 것이 분명하다.
부산 기업 가운데 전국 100대 기업에 드는 곳은 유감스럽게도 단 한 곳도 없다. 부산 1등인 르노코리아자동차의 전국 순위는 120위다. 그나마 1000대 기업에 들어간 부산 기업도 고작 27곳에 그쳤다. 2008년 55개 사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부산 경제는 목하 뒷전으로 계속하여 밀리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751개 사가 몰려 있으니 수도권 공화국의 빛과 지방소멸의 그림자가 뚜렷이 교차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2030월드엑스포 개최를 놓고 부산과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는 리야드의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의 방한이 남긴 뒷맛도 씁쓸하기만 하다. 건설에만 670조 원이 들어간다는 ‘네옴시티’라는 제2의 중동 특수를 놓고 정부는 물론이고 대기업도 ‘오일머니’ 앞에 납작 엎드렸다. 국내 주요 그룹의 총수들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엑스포 유치전이 전개되고 있는 터라 부산으로서는 사실상 비상 상황을 맞은 것이나 진배없다. 이럴 때 부산과의 의리를 지키며 꿋꿋하게 부산엑스포 유치에 나설, 부산에 본사를 둔, 부산이 낳고 기른 대기업은 없나 하는 만시지탄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부산과 특별한 연고도 없는 대기업이 나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어온 것만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부산 하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가 떠올릴 수 있는 기업을 지금부터라도 시민의 힘으로 키워야 한다는 꿈을 갖게 된다. 기업이 당당히 민간 외교의 한 몫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고, 따라서 부산이 낳고 기른 기업을 통해 부산의 위상을 한껏 드높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2~24일 벡스코에서 열린 아시아 창업 엑스포(FLY ASIA 2022)는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아시아 창업도시 부산’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돛을 올린 창업 엑스포는 가능성의 씨앗을 품은 ‘비주류’ ‘경계인’의 경제 축제이자 스타트업의 성장과 도약의 꿈을 공유하는 창업의 마켓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내년 3월로 예정된 부산창업청 설립에도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12월 12~13일 벡스코에서 열릴 예정인 ‘2022 지산학 엑스포’도 부산의 새로운 흐름이다. 부산형 지산학 협력 모델을 찾겠다는 취지를 내건 첫걸음이다. 지방자치단체(지)와 기업(산), 대학 및 연구소(학)가 협력해 지역산업을 육성함으로써 지역 상생 발전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의 역량을 한껏 끌어올린 지산학은 새로운 창업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자 열쇠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부산이 2030엑스포에 명운을 걸고 있는 이때에 창업 엑스포와 지산학 엑스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잇따라 열리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국제관광도시이기도 한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지스타(G-STAR) 등을 통해 문화축제와 마이스(MICE)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특히 왜관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발판으로 한국 최고의 무역항으로 우뚝 선 부산은 한국거래소가 있는 거래의 도시로 성장했다. 박람회와 부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셈이다.
월드컵 시즌을 맞아 2002년 4강 신화를 이룩한 마법의 주문인 ‘꿈★은 이루어진다’는 슬로건이 다시 회자하고 있다. 늘 그렇듯 미래와 희망은 꿈꾸는 자의 몫이게 마련이다. 선비는 사흘 만에 만나도 눈을 비비고 대해야 할 정도로 성장한다는 뜻의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옛말이 있다. 심지어 〈장자〉에는 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 사이에 일체가 변한다는 교비비고(交臂非故)라는 말까지 있다. 모든 게 가능한 창업도시 부산도 시작이 반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