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째 ‘신의 영역’ 도전…난임치료 새 길 열어
세화병원, 국내 최고 수준 성공률
최신 배양기술·다양한 검사 성과
최근 5년 새 난임시술 11.5배 증가
입소문에 해외 환자도 꾸준히 찾아
산부인과에서 1978년 7월 25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영국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 당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있던 이상찬 세화병원 원장은 산부인과 의국에서 컨퍼런스를 준비하던 중에 TV를 통해 긴급뉴스를 접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가 자신의 평생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이 원장은 잘 지내던 대학병원 교수직을 던지고 나와 서울대병원에서 불임 분야를 연수하고 나서 1987년에 자신의 병원을 차렸다.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9년 후다. 그 무렵 국내 의료기술은 시험관 아기시술이나 인공수정을 하기에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한 우물을 파겠다는 심정으로 달려왔다.
■35년째 난임치료 한 길
세화병원이 올해로 개원 35주년을 맞았다. 세화병원은 지난 한 해 동안 시험관 아기 시술(IVF) 1968건, 인공수정(IUI) 796건, 정액검사 1779건을 실시했다. 매년 시술 및 검사 건수가 5000건 이상이다.
임신 성공률도 국내 최고 수준이다. 시험관 아기 임신율은 30세 이하는 58.6%, 40세 이상은 19.1%로 집계됐으며 연령대별 평균 임신 성공률은 43.7%를 기록했다. 신선배아 이식보다 냉동배아 이식 때 성공률이 높았다.
현재 국내 35세 이상 고령 임신 비율은 40%에 육박하는데 세화병원의 경우 35세 이상 고령 환자 비율이 66%에 이른다. 세화병원의 고령 환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평균 임신 성공률 43.7%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다.
■임신율을 높이기 위한 최신 배양기술
시험관 아기 시술은 난자를 채취하여 체외에서 정자와 수정시킨 후 2~6일간 배양한 후에 자궁에 이식하여 임신을 유도하는 시술이다. 양측 나팔관이 막히거나, 난소기능이 저하되거나 자궁내막증이 심한 경우, 정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 남성 난임환자 등이 그 대상이다.
이상찬 세화병원 원장은 “난임의 원인은 다양하다. 임신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컴퓨터 정자분석, 성숙정자 선별검사, 난자 활성화, 미세진동 배양법 등 다양한 기술들이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정자 분석은 채취된 정액을 컴퓨터 정밀 영상 시스템으로 정자의 운동성과 활동능력을 분석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정자의 능력을 자동적으로 평가하여 남성 난임의 원인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성숙정자 선별검사는 DNA 손상이 없는 건강한 정자를 얻기 위해 히알루노란이란 약품 처리된 슬라이드에 정자를 배양해서 선별하는 검사법이다. 난자 활성화는 칼슘 등을 이용해서 인위적으로 난자의 활성화를 유도해 수정률을 높이는 기술이다.
배아 미세진동 배양법은 체내 환경과 유사하게 자극을 주기 위해 미세 진동기 위에서 배아를 배양하는 방법이다. 레이저 보조 부화술은 자궁 착상을 돕기 위해 투명대를 뚫고 나오는 힘든 과정을 인위적으로 도와주는 시술이다. 35세 이상의 고령 환자와 배아를 둘러싸고 있는 투명대가 두꺼운 환자에게 시술해 준다.
착상 전 유전검사는 배아를 이식하기 전 5~6일째 포배기 배아로부터 소량의 세포를 생검하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상적인 배아만을 이식하는 방법이다.
전체 난임 중에서 30~50%가량이 남성의 문제로 인한 것이다. 정자 생성이 낮은 정자 형성 장애,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부고환 또는 정관이 폐쇄된 정자통과 장애, 사정장애 등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정자 숫자가 극히 적거나 정자의 기형률이 높은 경우에는 일반적인 체외 수정으로는 어려울 때가 많다. 이때는 미세조작기를 이용해 정상적인 하나의 정자를 선별하고 난자의 세포질 안으로 직접 넣어 수정시키는 세포질 내 정자주입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난자은행과 정자은행 운영
만혼 여성이 늘고 출산을 미루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임신 성공률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 보고에 따르면 여성의 가임력은 20대에 최고를 보이고 35세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40세가 넘게 되면 자연임신 가능성이 5% 정도로 현저히 떨어진다.
결혼 연령이 올라가면서 난자은행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난자를 젊은 연령대에 냉동 보존해서 나중에 자신이 원할 때 해동시켜 임신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남편 또는 기증자의 정액을 일정기간 동결 보존했다가 임신을 원하는 대상자에게 공급하는 시설이 정자은행이다. 채취한 정액은 동결을 완료한 후에 -196도의 액체질소에서 사용하기 전까지 냉동 보관된다.
이상찬 원장은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로 인해 정자 생성에 장애를 가질 위험이 있을 때도 정자은행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도 찾아오는 난임 환자
매년 난임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난임시술 환자는 최근 5년간(2017~2021년) 1만 2569명에서 14만 3999명으로 약 11.5배 늘었다.
지난 한 해 세화병원에서 난임치료를 받은 신규 환자는 1968명이다. 내국인 환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환자 방문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의료기술이 입소문을 타고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에서도 난임환자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세화병원의 해외사업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의료관광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전부터 해외환자 유치사업을 해 온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 중국 칭다오 현지의 의사들과 교류를 하면서 매년 200명 정도의 해외 환자가 세화병원을 찾고 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