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밀크플레이션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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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창조 신화가 우유와 관련이 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은하수(milky way)는 여신 헤라가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흘린 젖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로마의 시조로 알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성장했다는 전설마저 있다.

포유류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다. 우유는 1만 년 전부터 지중해 동쪽 서부아시아와 터키 등지에서 마시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카이로박물관에는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중왕국 파라오 멘투호테프 2세의 아내 카위트의 대리석 관에 소젖을 짜는 남자가 새겨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도 기원전 400년경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달콤한 첫맛’인 우유를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마신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기 위한 국가 상설기관으로 유우소(乳牛所)를 운영했다. 조선 숙종 때는 왕이 총애하는 신하들에게 우유죽을 하사했다는 기록도 전해져 온다.

우유는 계급 갈등의 기폭제로도 등장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지도자 로베스피에르가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우윳값 절반 인하를 지시하자, 낙농업자들이 젖소를 죽여 고기와 가죽으로 팔면서 오히려 우유 가격이 치솟았다. 정책 실패로 가난한 아이들은 우유 구경조차 못 할 지경이 됐고,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최근 들어 국내산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우유는 물론 가공유와 유제품, 우유가 들어가는 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한다. 생크림과 휘핑크림, 치즈 등 우유를 주로 사용하는 카페와 제과점 자영업자들은 1년 중 최대 성수기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격을 유지하기도 올리기도 난감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가스료, 전기료에 이어 우유 가격까지 도미노처럼 오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국적으로 비가 오면서 내일부터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져 서민들의 삶이 점점 고단하다. 정치권은 쓸데없는 정치 싸움 대신에 국민 삶을 편안하게 하는 정교한 정책 실행에 힘을 모아야 한다. 갈증만 나는 생활고에 냉장고에서 시원한 우유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을 정도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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