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부르는 급성 녹내장…기온 떨어지면 더 위험하다
시신경 손상되며 시야 좁아져
극심한 두통·구토·충혈 동반
안압 낮추는 주사제·약물 사용
레이저 이용한 홍채 수술 시행
60대 여성 A 씨는 갑자기 앞이 뿌옇게 보이고 심한 두통과 구토 증상이 있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신경과와 내과 계통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었지만, 뜻밖에 안과 검사에서 안압이 정상 범위(10~21㎜Hg)를 훨씬 넘는 40 이상으로 나오면서 급성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녹내장은 황반반성, 당뇨망막병증과 함께 3대 실명 질환으로 꼽힌다. 특히 요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는 시기에 50대 이상 여성들이 주의해야 할 질환이 급성 녹내장이다.
■전방각 막혀 폐쇄각 녹내장 유발
녹내장은 시신경의 혈류 변화나 안압의 상승으로 인해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시야가 점차 좁아지는 질환이다.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안개가 낀 듯 앞이 뿌옇게 보이고, 주변부터 서서히 안 보이면서 시야가 좁아지다 심한 경우 실명에 이를 수 있다.
백내장은 수정체의 혼탁으로 시력이 떨어지게 되며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데 반해, 녹내장으로 인해 실명이 되면 회복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다.
녹내장은 크게 개방각 녹내장과 폐쇄각 녹내장으로 나뉘는데, 급성 녹내장은 엄밀히 말하면 급성 폐쇄각 녹내장이라 할 수 있다.
백록안과의원 서홍융 원장은 “전체 녹내장 중 폐쇄각 녹내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서양에서는 10~15% 정도이나, 우리나라에서는 21% 정도로 정상 안압 녹내장 다음으로 많다”며 “나이가 들수록 발생이 증가하고, 남성보다 여성, 근시보다는 원시 환자에게서 유병률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폐쇄각 녹내장은 눈 안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액체인 ‘방수’가 방출되는 통로인 전방각이 막히며 발생하는 녹내장이다. 이 같은 전방각 폐쇄는 동공 부위와 수정체의 전면이 접촉해 차단되거나 홍채 자체의 모양이 볼록한 ‘고원홍채’, 수정체의 전방 이동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유발된다.
만성적 폐쇄각 녹내장은 미약한 두통과 시력 저하가 반복적으로 동반되다가 점진적으로 시야가 좁아진다. 반면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안압이 돌연 30~40㎜Hg 이상 치솟기 때문에 각막 부종으로 인한 시력 저하가 심하고, 극심한 두통과 눈이 빠지는 듯한 통증, 구토, 충혈 등 특징적인 증상을 동반한다.
서홍융 원장은 “50~60대 여성이 갑작스럽게 두통과 시력 저하, 구역질이나 구토 증상을 겪는다면 안과적 문제, 특히 급성 녹내장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사제·약물로 안압 신속히 낮춰야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안압이 치솟고 진행이 빨라 적절한 치료가 최대한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수일 내로도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안과 분야의 응급질환이다. 만성 녹내장이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진행돼 ‘소리 없는 시력 도둑’이라 불리는 것과 달리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극심한 두통 같은 뚜렷한 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제때 치료만 받으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최대한 빨리 안압을 떨어뜨려 시신경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료는 동공 차단을 제거하고, 좁아진 전방각을 넓게 해 안압을 낮추는 데 중점을 둔다. 우선 안압을 신속히 낮추는 정맥주사제와 경구용 안압하강제를 사용하고, 안약을 점안한다. 이렇게 안압이 정상 수치로 내려가게 되면 안압 유지와 재발 방지를 위해 안약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약물 치료에도 안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주로 레이저를 이용해 홍채절제술을 시행하거나 홍채성형술까지 병행하기도 한다.
백내장으로 인해 폐쇄각 녹내장이 유발되기도 한다. 노화 등으로 수정체가 앞뒤로 두꺼워지게 되면 전방각이 좁아지고 동공이 차단되면서 폐쇄각 녹내장에 이르는 것이다.
서홍융 원장은 “팽대된 수정체로 인해 향후 폐쇄각 녹내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면 예방적으로 백내장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좋으며, 최근 연구들에서 레이저 주변부 홍채절개술에 앞서 백내장 수술을 했을 때 효과가 아주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런 조치에도 안압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섬유주절제술이나 방수유출장치삽입술과 같은 녹내장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온 떨어지는 겨울에 특히 주의
녹내장은 완치할 방법이 없고, 질병의 악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최선의 치료다.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그만큼 오랫동안 초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조기 진단을 위해서는 안과를 방문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녹내장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40세 이상이 되면 매년 녹내장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폐쇄각 녹내장은 기온이나 일조량이 뚝 떨어지거나 치솟는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에 특히 많이 발생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어두운 곳에 오래 머물지 말고, 고개를 숙인 자세로 작업을 하거나 장시간 독서를 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교감신경이 항진되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흥분된 상태가 오래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서홍융 원장은 “특정 약물로 인한 부작용도 고려해야 하는데 진정제, 혈관수축제, 기도 확장제, 식욕억제제, 파킨슨병 치료제, 감기약, 항구토제 등도 주의해야 할 약물”이라며 “최근에는 다이어트 약물 복용 후 안구 통증으로 내원해 폐쇄각 녹내장을 진단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