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서 백악기 화석 무더기 발견… 문화재청은 시큰둥?
진주시 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나와
백악기 척추동물 발자국 등 11종 발굴
한국지질유산연구소 “밀집도·희소성 높아”
문화재청 “균열 심하고 흔한 화석 많아 보존 불필요”
경남 진주시의 한 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백악기 척추동물들의 발자국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하지만 이를 관리해야 할 문화재청이 화석산지 보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자칫 한순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30일 진주교육대학교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 236-6번지 일원 도로확장공사 구간에서 백악기 화석이 발견됐다. 산을 깎는 과정에서 화석층이 드러났고 김경수 교수(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이 현장을 확인했다. 일부 발굴 구간에서만 개구리와 익룡, 사족 보행 악어, 이족 보행 악어, 새, 도마뱀, 용각류 공룡, 수각류 공룡 발자국 등 11종의 화석이 발굴됐다.
김경수 교수는 현장의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좁은 공간에서 11종의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이 드러났고 지금까지 확인된 수만 수백 개에 달한다. 단위 면적당 화석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다양성까지 갖추고 있는데, 아직 발굴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화석 종류별 특징과 학술적 가치도 주목 받고 있는데, 특히 개구리 발자국 화석이 학계의 관심을 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개구리 발자국 화석이 발굴된 곳은 전남 신안군 사옥도와 진주시 충무공동 2곳 밖에 없다. 이 가운데 사옥도는 보존 상태는 좋지만 7000만 년 전의 것이다. 또 충무공동 화석은 1억 1000만 년 전 것이긴 하지만 발자국이 4개에 불과하고 보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
반면 이번에 발견된 화석은 충무공동 화석보다 더 이전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측되며 발자국 수도 100개가 넘는다. 보행렬 역시 선명해, 개구리의 행동진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밖에 사족 보행 악어 발자국은 꼬리가 끌린 흔적이 있는데 국내 첫 발견이다. 또 이족 보행 악어의 것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진주 지역에서는 처음 확인됐다.
그동안 진주시 충무공동과 정촌면 진주층에서 다양한 중생대 백악기 화석이 발견됐는데, 충무공동에는 익룡발자국전시관이 운영되고 있고 정촌면은 최근 천연기념물 지정이 확정돼 보존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집현면 신당리까지 포함된다면 백악기 공룡과 함께 살았던 생태계를 연구하고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신당리에서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척추동물 보행렬도 드러나 새로운 발견이나 학설이 나올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김경수 교수는 “밀집도나 희소성이 매우 높으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면서 “1억 1000만 년 전 백악기에 살았던 척추동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지질학적 창(geological window)이다”고 말했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의 발자국 화석 보존 상태와 다양성으로 미뤄 볼 때 진주시와 사천시, 고성군 일대를 묶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김 교수의 기대와는 달리 문화재청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화석산지는 지방도 도로확장 공사 현장에 있는데, 문화재청이 현지보존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조만간 통째로 사라질 운명이다.
문화재청은 앞서 두 차례 현지조사를 진행했는데 현지보존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다시 공사가 시작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지 화석산지를 확인한 결과 균열이 심해 보존이 쉽지 않다”면서 “흔한 화석이 많고 다른 대규모 화석산지에 비해 규모가 미미해 보존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가치 있는 부분은 기록으로 보존할 예정이며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에 일부 보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경수 교수는 “현장 보존 조치 여부를 정하는데 있어 제대로 가치 평가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이 정도 발자국 화석산지가 발견이 됐는데 보존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엇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진주시의회 기획문화위원회도 지난 25일, 화석산지 현장을 둘러보고 현지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