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시위는 적대세력’ 중국 폭력진압에 유혈사태 조짐도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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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휴대전화 등 추적
경찰, 참가자 대대적 체포 나서
추가 발생 차단 병력 대거 배치
취재 BBC기자 폭행 구금 당해
미국 등 서방 “평화 시위는 권리”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를 위한 집합 장소로 온라인 상에서 지목된 중국 베이징의 한 지역에서 29일(현지시간) 경찰차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시위는 지난 24일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일어나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가 발단이 됐다. 연합뉴스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를 위한 집합 장소로 온라인 상에서 지목된 중국 베이징의 한 지역에서 29일(현지시간) 경찰차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시위는 지난 24일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일어나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가 발단이 됐다. 연합뉴스

중국의 공안당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해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중국 곳곳에서 ‘백지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부산일보 11월 30일 자 12면 등 보도)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공안이 소셜미디어와 휴대전화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시위대를 체포하고, 일부 지역에서 폭력진압 보도가 잇따르는 등 이번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당국이 지난 24일 우루무치 화재로 촉발된 시위를 차단하는 한편 시위 참가자 검거에 나섰다”고 30일 보도했다. 특히 중국 공안당국은 시위 참가자 체포를 위해 현장 채증 사진과 영상, 텔레그램을 비롯한 메신저, 소셜미디어, 휴대전화 추적 등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상하이와 베이징, 광저우, 우한, 난징, 청두 등에서 발생한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소셜미디어와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점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중국에서 사용할 수 없는 메신저이지만,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쓸 수는 있다. 그럼에도 VPN 사용은 중국에서 불법이기에 공안에 적발되면 처벌을 받는다.

중국 경찰은 시위 참가 의심자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시위 장소, 경찰 위치 등을 논의한 흔적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베이징 시위 현장에 있었던 한 대학생의 경우 경찰이 휴대전화를 추적해 그의 동선을 확인했고, 왜 시위 장소에 있었는지 진술서를 작성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WSJ는 전했다. 저장성의 한 학생도 시위에 참가한 뒤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소셜미디어에 다시는 백지시위 관련 글을 올리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나서야 풀려나기도 했다. 중국 주요 도시에는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을뿐만 아니라 경찰이 영장 청구 없이도 개인의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다.


11월 30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코로나19 규제 시위 도중 보호복을 입은 경찰이 방패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1월 30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코로나19 규제 시위 도중 보호복을 입은 경찰이 방패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당국은 시위 장소마다 공권력을 투입해 시위대 강제해산에 나섰다. 시위 가담을 이유로 구금된 시민들도 속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상하이에서는 지난 27일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BBC 기자가 경찰에 붙잡혀 폭행당하고 구금됐다가 몇 시간 만에 석방되는 일도 발생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추가적인 시위를 차단하는 데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주요 도시의 시위 발생 가능 지역에 경찰 병력을 대거 배치해 시민 접근을 전면 봉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도 이에 동조해 시민들의 백지시위를 ‘적대세력 침투’로 규정하고 서방 국가들이 시위에 개입했다는 프레임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28일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 전체회의는 “법에 따라 적대세력의 침투 및 파괴 활동과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위법 및 범죄 행위를 결연히 단속해 사회 전반의 안정을 확실히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 문건에서 ‘적대세력’은 외국의 반중국 세력과 중국 내 공산당 반대 세력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적대 세력의 침투 및 파괴 활동’은 각지에서 발생한 시위에 외국 배후세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미국 등 서방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의 평화 시위를 보장하지 않는 중국을 연일 비판하고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외무장관회의 참석차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를 방문 중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중국 시위와 관련해서, 미국의 입장은 모든 곳에서와 동일하다”며 “우리는 어디에서든 평화롭게 시위할 시민들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같은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중국의 ‘백지 시위’ 확산 사태와 관련, 중국 국민의 표현과 저항이 허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최근 주요 외교정책 연설에서 자국의 BBC 기자가 상하이 시위를 취재하던 중 현지 공안에 붙잡혀 구타당한 일을 언급하며 중국 정부를 비난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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