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유기동물보호소’ 건립 설 자리 못 찾아 2년째 ‘유기’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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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악취 ‘혐오시설’ 낙인
대체부지 낙점 번번이 무산
군 “확실한 대책 마련하겠다”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내 창고 1동을 개조해 마련한 임시 동물보호센터. 80마리가 적정인 시설에 145마리가 들어찼다. 부산일보DB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내 창고 1동을 개조해 마련한 임시 동물보호센터. 80마리가 적정인 시설에 145마리가 들어찼다. 부산일보DB

경남 고성군 ‘유기동물보호센터’ 신설이 민선 8기 들어서도 표류하고 있다. 예산까지 확보했지만, 건립 용지가 없어 2년째 하세월이다. 소음과 악취를 유발하는 ‘혐오 시설’이란 낙인 탓에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낡고 비좁은 임시보호소에 갇힌 동물들은 또다시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성군에 따르면 군은 2010년부터 지역의 한 동물병원에 관내 유기동물 관리를 맡겨왔다. 그런데 지난해 한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열악한 환경과 부실한 관리 실태가 드러나 ‘유기동물 지옥’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군은 위·수탁 계약을 해지하고 농업기술센터 내 창고 1동을 개조해 임시보호소를 마련, 직영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8개월여 만에 입양률은 도내 최고로 높아지고, 안락사율은 전국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며 ‘유기동물 천국’으로 탈바꿈했다. 이에 군은 동물보호센터를 건립해 더 나은 동물복지 환경을 구축하기로 했다. 추정 사업비는 20억 원. 도 특별조정교부금 8억 원에 군비 12억 원을 보태기로 하고, 도비를 우선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회화면 봉동리(공룡엑스포 주차장)를 예정지로 점찍었다. 반면, 인근 마을 주민들은 ‘혐오 시설’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거듭된 설득에도 주민들이 물러서지 않자 현 임시보호소가 있는 농업기술센터 안을 대체지로 낙점했다. 공공기관 용지에 들어서면 접근도 쉽고, 혐오 시설 이미지도 탈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반면 군의회는 주민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며 반대했다. 이어 센터 건립에 필요한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군의회 심사에서 부결되면서 계획은 백지화됐다. 이 과정에 임시보호소는 임계점에 닿았다. 80마리가 적정 수준인 임시 시설에 배가 넘는 180여 마리가 들어찼다. 과밀 수용에 예민해진 동물 간 다툼이 빈번해졌고, 급기야 새끼를 물어 죽이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군은 급한 대로 4억 5000만 원을 투입해 임시보호소 시설을 확장하기로 했지만 이마저 군의회가 2억 5000만 원을 삭감해 중단됐다. 이를 두고 동물보호센터가 당시 여당 군수와 '여소야대' 군의회 간 정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양측은 민선 7기 출범 이후 주요 현안마다 부닥치며 내내 살얼음판을 걸었다.

결국, 군은 보호 중인 유기견 20마리에 대한 안락사를 예고했다. 그러자 전국의 반려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입양 문의가 잇따랐고 모두 새 주인 품에 안겼다. 하지만 겨우 발등의 불만 껐을 뿐이다. 현재 남은 동물만 145마리로, 계속 죽음의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과밀 수용에 예민해진 동물 간 다툼이 빈번해졌고, 급기야 새끼를 물어 죽이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부산일보DB 과밀 수용에 예민해진 동물 간 다툼이 빈번해졌고, 급기야 새끼를 물어 죽이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부산일보DB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창고 1동을 개조해 마련한 임시 동물보호센터. 부산일보DB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창고 1동을 개조해 마련한 임시 동물보호센터. 부산일보DB

다행히 민선 8기 여당 군수에 군의회도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동물보호센터도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군은 9월, 최종 건립 예정지로 상하수도사업소 내 족구장을 낙점했다. 추가 매입비용이 들지 않는 데다, 가장 가까운 죽동마을과 670m, 신은마을 730m, 가동마을 750m 그리고 송정마을과 950m나 떨어져 있어 반대 목소리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번에도 민원에 발목이 잡혔다. 주민들은 시설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하필 내 집 앞에 혐오 시설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상하수도사업소 이전과 무분별한 축사 건축으로 악취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 또 다른 소음·악취 시설까지 받아들일 순 없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그동안 말로만 대책마련을 외친 행정에 대한 불신도 깊다.

한 주민은 “왜 또 우리 마을인가”라고 반문하며 “처음 상하수도사업소가 이전해 올 때도 (군에선) 아무런 피해가 없을 거라고 호언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행정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고 했다.

고성군은 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 주민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전국 곳곳의 동물보호소를 찾아가 시설 형태와 운영방식 등을 확인했다”면서 “건립되면 저감시설을 통해 소음이나 악취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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