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차세대 B-21 폭격기
군용 비행기 역사를 보면 폭격기의 위상은 다소 애매한 듯하다. 폭격기의 전성기는 대체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적진 후방까지 고공으로 날아가 많은 양의 폭탄을 목표물에 쏟아붓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6·25 전쟁 때 마지막 공세를 준비 중이었던 북한군을 향해 무려 100대에 가까운 B-29 폭격기가 26분 동안 960톤의 엄청난 폭탄을 퍼부었다고 한다. 당시 이 폭격으로 73개 도시가 초토화했고, 평양에는 2채의 건물만 남았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폭격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이후 폭격만을 위한 군용기는 점차 쇠퇴했다. 많은 폭탄을 적재했지만, 허술한 자체 방어력은 약점이었다.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전투기가 출현하면서 공중 격추될 가능성도 커졌다. 거기다 지상에 설치된 대공 화기의 발달과 레이다의 출현은 더욱 폭격기의 입지를 줄이는 요인이 됐다.
그럼에도 폭격기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특히 전 세계를 작전 지역으로 삼는 강대국일수록 폭격기는 여전히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전 세계적으로 전투기를 운용하는 국가는 많지만, 최신예 폭격기를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최신예 폭격기 운용은 강대국의 상징으로 꼽힌다.
엄청난 개발과 유지 비용 등 효용성이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초강대국들이 21세기에도 폭격기를 운용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군사적 메시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최신예 폭격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잠수함과 함께 핵폭탄 운반 수단의 삼각 축을 이룬다. 강력한 군사적 억제력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최첨단 장비를 장착한 폭격기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다.
최근 미국이 냉전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 개발한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 레이더(Raider)’를 전격 공개했다. 레이다 탐지가 어려운 현존 최고의 스텔스 기술을 집약해 다른 어떤 기존 폭격기도 이에 필적할 수 없다고 미국 공군은 설명했다. 현존하는 어떤 ‘방패(레이다)’로도 막을 수 없는 ‘창’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새로운 방패가 출현하면 곧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창이 나오기 마련이다. 창과 방패의 군사 무기에선 이런 경쟁이 더 치열하다. 그 대결의 끝을 알 수도 없으니 두렵기도 하다. 공개된 차세대 B-21 폭격기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