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제1호 반도체 특화단지, 부산에 지정돼야
배수현 부산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장
최근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TV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로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드라마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고래를 이길 수 없다는 임원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의 일화가 나온다. 드라마 속 회장은 고래 같은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시 새우와 같이 작았던 삼성의 덩치를 키우는 전략을 선택한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30여 년간 세계 1위를 지켜 오고 있는 삼성도 새우와 같이 미약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러한 일은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사례이다.
정부는 지난달 ‘제1차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열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초격차 확보 및 기술·인력 보호가 필요한 반도체를 첨단전략산업으로 선정하였다. 글로벌 첨단산업 육성 경쟁에 대응한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제정과 컨트롤타워로서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 설치에 따른 후속 조치로 진행된 것이다. 첨단전략산업 선정에 따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하여 입지 확보, 인프라 구축, 기술·인력·금융 등 맞춤형 패키지를 지원함과 함께 반도체 특성화대학원을 통해 5000여 명의 반도체 석·박사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산업 생태계 형성은 시간과 전략 필요
글로벌 첨단산업 정책 수도권에 치중
규제 완화로 반도체 기업 이전 활성화
정부 지원 통해 지역 신산업 육성
부산, 파워반도체 산업 발전 꿈 이뤄야
자동차·조선 융합한 신성장 동력 가능
문제는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전략은 수도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하는 ‘K-반도체 벨트’에 집중되고 있다. 파워반도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인 부산뿐만 아니라 광주·전남, 대구·경북 등 반도체를 지역 특화산업으로 키우고자 노력하는 지역이 소외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이대로라면 부산을 비롯한 남부권 지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은 미완의 꿈으로 남을 것이다.
부산도 ‘새우’와 같은 반도체를 육성하려는 야심 찬 시도가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에만 관심을 쏟던 10년 전부터 부산시는 부산테크노파크를 중심으로 파워반도체 클러스터를 기획하였다. 그 결과 2017년 부산대 내 장전단지와 2019년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산업단지 내 장안단지에 파워반도체상용화센터(반도체센터)를 구축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반도체와 관련하여 부산테크노파크에 MEMS/NANO부품생산센터(멤스센터)와 스마트전자부품기술지원센터(스마트센터)가 있었다. 멤스센터는 반도체센터의 전신으로 남아 있으나, 팹리스 기술을 지원했던 스마트센터는 문을 닫았다. 부산에 산업 기반이 약하여 지원 성과가 미흡하고 후속 사업이 없어 문을 닫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은 미약하고, 어린 것은 유약하다. 그래서 미성숙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걸음마 단계의 산업을 유치산업(幼稚産業·Infant industry)이라는 이름 하에 보호하는 것이다. 유치산업은 초등학교 입학 전인 미취학 아동의 성장 단계이므로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스마트센터도 당시에 잘 컸다면 현재와 같은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부산 지역의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그만큼 지역에서 신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가장 먼저 넘어야 하는 것이 지역에 관련 산업 생태계가 없다는 중앙부처의 뻔한 반대 논리이다. 이에 대해 삼성이 반도체를 처음 시작할 때 우리나라에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있었느냐고 되묻고 싶다. 설혹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해도 스마트센터와 같이 성과 압박 때문에 중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아기에게 우유를 급히 먹인다고 금방 성인이 될 수 없듯이 새롭게 시작하는 산업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지역에서는 소중한 신산업을 정성껏 키우고 그 산업에 미래를 의탁하고 싶어 한다. 정부가 지역의 성장 동력이 잘 자라도록 기다려 주고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이것이 지역균형발전의 기본 철학이 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는 그간 정성과 노력을 쏟았으나 후속 지원이 시급한 파워반도체상용화센터가 있는 부산에 제1호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해야 한다. 특화단지 지정은 반도체 기업에 걸림돌인 입지 규제를 완화하고 기반 시설 조성 지원이 가능하므로 부산으로 반도체 기업이 이전할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아가 부산에 파워반도체 산업의 육성뿐 아니라 지역 주력산업인 자동차·조선 산업과 융합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부산의 산업 체질을 전환하는 데 이번 특화단지 지정이 중요한 기회이다. 부산시도 특화단지 지정을 위해서 모든 논리와 행정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부산의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파워반도체 산업 육성이라는 꿈이 꿈으로 남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