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대 금리 인위적 개입…‘신관치’ 논란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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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정기예금 연 5%대 상품
불과 2주도 안 돼 거의 자취 감춰
금융당국 “시장 안정 불가피한 조치”
시장 왜곡 행위, 소비자 피해 우려

금융당국이 예·대금리 인상 자제 등 인위적인 개입에 나서며 금융권에 '신 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예·대금리 인상 자제 등 인위적인 개입에 나서며 금융권에 '신 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권에 이른바 '신(新)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금리 상승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행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예대금리차 공시 등을 통해 수신금리 경쟁을 부추기던 당국은 불과 몇 달 만에 이를 자제하라고 나선 데 이어 대출금리 인상과 관련한 모니터링까지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자금경색' 상태에 놓인 금융시장이 금리 인상 여부에 민감한 만큼 시장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인위적 개입을 통한 시장 왜곡 행위로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6일 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 공시에 따르면 이날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정기예금 중 연 5%대 금리를 제공하는 곳은 하나은행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지난달 중순만 하더라도 5대 시중은행 중 4개 은행이 연 5%대 금리를 제공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2주가 안 돼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과 반대로 정기예금 금리가 역주행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린 영향이 크다. 과도한 금리 상승으로 '대규모 머니무브' 등이 일어날 경우 일부 금융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당국이 설명하는 개입의 근거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은행권으로 자금이 쏠려 2금융권 등에서 유동성 부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에 시중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총 90개 금융사에 퇴직연금 금리 산정 시 운용 수익 등을 고려해 금리를 결정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이는 연말을 맞아 새로운 상품을 찾아 나서려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증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금융사에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사전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행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초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금융사에 수신금리 인상을 압박하던 정부가 한순간에 반대로 이를 제동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의 입맛대로 상황이 수시로 뒤집어지고 있다"며 "오락가락하는 당국의 정책 때문에 시장은 안정은커녕 혼란만 가중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미 대출금리가 크게 오른 가운데 예금금리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며 금융소비자들이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란 우려도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금리는 높은데 예금금리는 낮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강하다"며 "정부의 모순된 정책 추진으로 재테크를 계획했던 소비자들의 계획도 상당한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추가 인상 자제까지 나서며 이 같은 관치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개별 금융사들의 대출금리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나섰는데, 금융권에서는 이를 대출금리를 더 올리지 말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준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의 이자 부담 경감이 목적으로 보이지만, 은행채 발행 억제와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지시하며 동시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전례가 없던 만큼 관치금융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금융권에서 제기된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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