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어 올해 한글 깨친 어르신…사연 담은 요리책 발간 화제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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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70대 사연 담은 요리 전수


한글을 깨친 경남 양산지역 어르신들이 한평생 살면서 간직한 다양한 사연을 담은 요리책. 김태권 기자. 한글을 깨친 경남 양산지역 어르신들이 한평생 살면서 간직한 다양한 사연을 담은 요리책. 김태권 기자.

한글을 깨친 경남 양산지역 어르신들이 한평생 살면서 간직한 다양한 사연을 담은 요리책을 발간했다. 지난해 이어 두 번째이다. 물론 책 발간 참여자들은 다르다.

양산시는 최근 ‘요리 한 숟가락, 사연 두 꼬집 Ⅱ’ 요리책 550부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시는 지난해 요리책 발간 후 전국에서 ‘책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자,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발행 부수를 더 늘렸다고 덧붙였다. 이 책은 양산시가 운영 중인 ‘찾아가는 한글 교실(성인 문해교육)’에 재학 중인 230여 명의 학습자 중 50명이 만들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대다.

책에는 김치(10명)와 반찬(6명), 일품요리(16명), 국류(10명), 간식(8명)으로 나눈 학습자의 요리 레시피와 비법, 사연까지 담겨있다.

‘우리 집 명절, 식탁의 터줏대감 나박김치’ 레시피를 소개한 박 모(73) 씨는 “명절 때 엄마가 빼놓지 않고 해 주시던 음식이 나박김치였다”며 “물자가 부족한 시절, 명절은 어린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박 씨는 “느끼한 기름기가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었는데 이때 나박김치 한 숟갈하면 어린 나이에도 속이 개운했던 기억이 난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힘드시기를 버티게 한 손두부’ 레시피를 제공한 한 모(74) 씨는 “아픈 남편을 대신해 밭에 콩 농사를 지어 잠을 설치며 두부를 만들었고 그것을 팔아 생활했다”며 “이젠 힘들어 잘 만들지 않지만, 그 시절 그 두부 맛이 그리우면 딸과 함께 만들어 모두 모여 먹는다”고 덧붙였다.

‘시래기밥’ 레시피를 알린 김 모(73) 씨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배를 채우기 위해 매일 시래기밥을 해주셨다”며 “시래기는 듬뿍 넣고, 보리쌀은 조금 들어간 시래기밥이 그때는 왜 그렇게 보기 싫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시래기밥이 그리워 가끔 한 번씩 해 먹는데 어머니가 해 주던 그 구수한 맛이 나지 않는다”며 “내 입맛이 변했는지 (…) 문득 어머니의 시래기밥이 그리워집니다”라고 덧붙였다.

‘회사 식당에서 가장 인기 좋은 돈가스’ 요리 레시피를 소개한 김 모(81) 씨는 “내가 젊었을 때 증권회사 식당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며 “내가 만들 수 있는 음식 중 돈가스를 만드는 나만의 비법 있다”고 말했다.

시는 요리책을 발간하면서 글을 교정하지 않고 학습자가 쓴 것을 그대로 수록했다.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친근한 느낌과 실감 나는 표현을 통해 어르신들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 동년배 어르신들에게 추억의 시간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요리책에 소개된 어르신들은 56세에서 84세로 한글을 잘 모르고 아직 초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제일 자신 있는 요리의 레시피와 비법 공개는 물론 요리에 담긴 추억까지 담담하고 유쾌하게 전하고 있다”며 “사라져 가는 토속음식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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