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대나무의 합주에 별빛이 환호하는 울산의 밤
울산 밤 나들이
신선이 놀았다는 명선도, 섬 전체 야경 작품
곳곳 경관 조명·미디어 아트로 신비한 매력
생동감 넘치는 연출에 동화 속 들어온 듯
태화강 십리대숲 LED조명 은하수길 열려
바스락거리는 대나무 소리 따라 별빛 움직여
600m 구간 시골 밤 수놓는 반딧불 떠올라
부쩍 차가워진 바람에 바야흐로 겨울임을 실감한다.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인 동지가 점점 다가서면서 밤은 더욱 길어지고 있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옛 노래처럼 밤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해지는 때이다. 가로등과 건물이 밝히는 낱낱의 조명들은 도심 속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하나의 예술품인 야경을 만들어 낸다. 인위적인 도심의 야경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컬래버레이션으로 빚은 야경의 매력은 어떨까. 나무에, 바위에, 자갈에, 그리고 바다에 오색찬란한 별빛이 내려앉은 울산 명선도와 십리대숲 은하수길을 찾았다.
■해가 지면 섬 전체가 신비로운 빛으로 물드는 ‘명선도’
명선도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앞에 있는 작은 섬이다. 올가을 태풍 피해를 입고 복구 공사가 한창이었던 명선도는 최근 다시 개방됐다. 명선도는 과거엔 매미들이 많이 운다고 해서 ‘명선도(鳴蟬島)’라 불렸지만, 지금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던 섬이라고 해서 ‘명선도(名仙島)’로도 불린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가야 하나…’ 어떻게 섬으로 갈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명선도를 눈앞에서 보고 나니 괜한 걱정이었다. 진하해수욕장에서 명선도까지는 부표처럼 물 위에 뜬 다리로 이어져 있어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명선도 입구에서는 신비로운 색감의 파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파도에 비춰진 불빛에 때론 보랏빛 파도가, 때론 푸른빛과 초록빛 파도가 번갈아 만들어졌다. 파도가 잔잔하게 들락날락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보랏빛 물결에 발을 디뎠다가 신발이 젖었지만 동심을 되찾은 기분이다.
명선도에 조성된 산책로에 들어서자 해파리 모양을 한 알록달록 조명들에 눈길이 간다. 마치 바닷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책로 양옆으로 선 나무에도 경관 조명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명선도 산책로를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자갈 마당이 나오는데 마치 작은 별빛들이 총총 내려앉은 듯 밤하늘을 닮았다.
다시 산책로를 따라가니 나무 사이로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 호랑이와 사슴, 거북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듯한 모습에 어린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나지막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폭포를 만났다. 가파른 바위 위에 조명을 비춰 물이 생동감 넘치게 흘러내리는 모습을 연출해 냈다. 진짜 폭포수 같다.
언덕을 오르는 나무 계단에 그려진 그림들은 마치 동화 속 그림 같다. 형광 물감으로 꽃과 나뭇잎, 동물을 그려 놓고 여기에 불빛을 비추니 갖가지 형광빛이 아기자기한 매력을 뽐냈다.
계단을 다 오르니 명선도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야경은 명선도를 찾은 이들에게 보너스다.
△여행 팁 : 명선도는 동절기와 간절기, 하절기 각각 불빛을 밝히는 시간이 다르다. 동절기(10~2월)에는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입장 마감 오후 9시 30분)된다. 간절기(3~4월, 9월)에는 오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입장 마감 오후 9시 30분)되며, 하절기(5~8월)에는 오후 7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입장 마감 오후 10시 30분)된다. 월요일은 운영하지 않으며, 밀물 때와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심할 때에도 안전의 위험이 있는 만큼 입도가 금지된다. 주말에는 진하해수욕장 인근 도로의 주차난이 특히 심각하다. 교행이 힘들 정도여서 차를 몰고 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당혹스러울 수 있다. 인근 공영 주차장이나 사설 주차장, 또는 카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것을 권한다. 명선도까지 들어가려면 백사장을 가로질러야 하고, 명선도 내 산책길이 매우 어둡기 때문에 구두보다 편안한 신발을 신는 게 낫다.
■밤이 되면 별빛이 흐르는 태화강 십리대숲 은하수길
울산 중구와 남구 일원에 조성된 태화강 국가정원은 순천만 국가정원에 이어 2019년 국내 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2년 주기로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2017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나 선정된 국내 대표 관광 명소이다. 대나무와 국화, 무궁화, 작약 등 다양한 식물은 물론이고, 조류, 나비 등에 이르기까지 20여 종류의 테마 정원으로 구성돼 사시사철 관광객들을 반기는 곳이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어둠이 짙어지며 모든 동식물이 숨을 죽이는 사이 십리대숲 은하수길은 어느새 밤의 주인공이 된다. 십리대숲은 구 삼호교부터 태화루 인근 태화교까지 10리, 약 4km에 걸쳐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길이다. 하늘과 맞닿을 듯한 키 큰 대나무가 때론 꼿꼿하게, 때론 비스듬히 흙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은하수길은 십리대숲 산책로 중 약 600m 구간에 LED조명으로 밤하늘에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에서 남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십리대숲 산책로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진입하는 순간 대나무숲에서 촘촘히 반짝이는 LED조명들이 밤하늘의 은하수를 연상시킨다. 한국동서발전이 지역사회 공헌 사업 일환으로 반딧불을 모티브로 해 조성한 경관 조명인 만큼 시골 밤에 은은하게 빛나는 반딧불 같기도 하다.
대나무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리자 별빛도 흩어졌다 모였다 한다. 자세를 낮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과 맞닿은 대나무숲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대나무숲 사이로 고개를 내민 밤하늘에는 진짜 별이 반짝인다.
은하수길은 매우 어둡다. 경관 조명을 부각하기 위해 인공 불빛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곳곳에 포토존이 설치돼 있지만, 빛이 부족한 밤에는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대나무숲에 총총히 박힌 별빛들이 만들어 낸 낭만적인 은하수 사진을 찍고 있으면 왜 은하수길은 밤에 와야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여행 팁 :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주차장이 여러 곳 있는데, 십리대숲 은하수길을 보려면 태화강 국가정원 5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게 가깝고 편리하다. 5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은은한 조명에 고즈넉한 풍취가 감도는 은하수다리를 건너면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가 나온다. 그곳에서 남동쪽 바로 가까이에 십리대숲 은하수길이 있다. 2시간 가까이 은하수길과 국가정원 일부 코스를 돌아보고 왔지만 주차요금은 5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은하수길 야간 조명은 일몰부터 오후 11시까지 켜진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밤이 되면 조명이 많지 않아 어둡기 때문에 맑은 날 찾는다면 하늘에서 많은 별도 볼 수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표지석 앞에서 남쪽으로 올려다보면 겨울철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둡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찾는 것을 권한다. 스마트폰으로 은하수길 경관 조명을 촬영하려면 야간 모드를 활용해야 한다. 손떨림 방지를 위해 삼각대를 가져가는 것도 좋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