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크리스마스의 이웃
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설렘 가득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세 번째로 맞는 기념일이지만 재작년이나 작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위드 코로나’로 일상이 많이 회복되어 송년회로 연말 분위기를 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다양한 연말 공연과 축제 소식도 들린다. 언뜻 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던 그때의 크리스마스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고, 많은 부분이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2022년의 크리스마스가 예년의 크리스마스와 같을 수 있을까. 그러기엔 올 한 해 너무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예수를 믿건 그렇지 않건, 전 세계인들은 세상에 사랑을 전하려 애썼던 한 인간, 예수의 탄생일을 저마다의 모습들로 기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기부금을 전하고 봉사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떠나 온 인류가 사랑을 느끼고 실천하는 날이다.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크리스마스 시즌에 대한민국 사회가 바라보아야 할 이웃은 누구일까.
코로나19서 회복 못 한 사람들
아직도 심리적 아픔 겪는 개인들
그리고 이태원 참사 유족들까지
다사다난한 2022년 마지막 달
우리 사회가 품은 여러 이웃에
조그마한 온기라도 보태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웃은, 코로나19로부터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이웃이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어 3년째 취업난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그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들은 영업장을 닫았고, 아직도 생계 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기사도 보았다. 이렇게 코로나19는 개인의 경제적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코로나가 개인의 건강에 미친 영향도 매우 크다. 여전히 병상에 누워 있는 고위험 환자들이 있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도 많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올해 정부나 지자체가 가장 먼저 돕고 개인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이웃들이다.
두 번째 이웃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고립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주변인들이 있다. 특히 낮보다 밤의 길이가 긴 겨울철, 쉽게 자신의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소식을 많이 접한다. 내면의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 아픔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청년들의 마음 건강을 위해 지자체의 무료 상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각종 정신 건강을 위한 온갖 서적과 영상들이 넘쳐나지만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가닿는지는 모를 일이다. 숨이 멎기 직전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려 내듯,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개인의 노력들이 심폐소생과 맞먹을 정도로 큰 힘을 가진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적 있다. 지자체는 마음 건강을 지킬 수 있을 만한 대비책들을 마련하고, 개개인은 주변 이웃들에게 다가가는 연말이 되면 좋겠다.
세 번째로 떠올리고 싶은 이웃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태원 사고 유족들이다. 불과 두 달 전 너무나도 안타깝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떤 말을 보탤 수 있을지 먹먹한 심정이다. 가장 먼저 정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사고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고를 의도한 이들은 없겠지만 공적 책임의 부재가 있었다는 사실은 드러나고 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진상 규명과 별개로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들릴 수 있는 연말이 되길 바라 본다.
크리스마스는 사실, 당연한 것을 다시 보는 새삼스러운 날이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정치가 제도로 보완하는 일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일상에서도 꼭 필요한 일들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게 만들기도 하고, 가끔은 공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지금과 같은 시즌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영 이웃들에게 눈을 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기록하는 많은 문서들은 그가 귀족이나 부자들이 아닌 고아와 과부, 노예들의 벗이었음을 일제히 보여 준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예수의 정신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한다. 한 해를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 본다. 작은 기적을 만들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