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내게도 '요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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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요정’ 스틸 컷. 사이더스 제공 영화 ‘요정’ 스틸 컷. 사이더스 제공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오면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하지만 그 마음이 로또를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은 확률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런 기적이 하나 찾아오길 바란다. ‘요정’은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기적 같은 일을 다루는 영화다. 그런데 이 기적은 동화처럼 허황되지만, 또 현실적이라 묘하다. 한 집 걸러 편의점이던 시대가 무색하게 요즘은 어딜 가나 카페 행렬이다. 장사가 잘될까 우려가 될 정도로 카페들이 들어차 있는 어느 중소 도시. 작은 카페를 운영 중인 ‘영란’은 우연히 만난 근처 경쟁 카페 사장인 ‘호철’과 눈이 맞아 부부의 연을 맺는다.

각각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는 자신의 카페 수익이 더 높다며 신경전을 펼치지만 손님이 들지 않은 건 도긴개긴이다. 티격태격하던 부부는 더 이상 두 카페를 운영할 형편이 되지 않음을 인정하고 매출이 좋지 않은 호철의 가게를 정리하기로 한다. 하지만 임대 기간이 1년이나 남아 있어 방법이 없다는 건물주의 말에 부부는 체념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호철이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면서, 미스터리한 청년 ‘석’을 만나고 부부의 일상이 달라진다. 석은 교통사고를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부부는 석이가 의심스럽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석이를 호철의 카페 직원으로 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부터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던 호철의 카페에 손님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카페 수익마저 영란의 가게를 앞지르자, 영란은 호철에게 찾아온 행운이 바로 석이라는 요정임을 눈치챈다.

중소도시 카페 사장 ‘영란’과 ‘호철’

서로 경쟁하다 눈 맞아 부부의 연

부부에게 요정 같은 청년 ‘석’ 등장

가벼운 판타지에 현실 반영한 전개

영란에게 기 한번 펴지 못하던 소심한 호철이 카페 매출이 늘어나자 단번에 음식물 쓰레기 당번에서 해방되고, 영란 몰래 전 부인에게 양육비까지 보낼 수 있게 되는 호철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부부의 관계가 역전된 이유는 돈 때문이고, 이는 부부간에 불신의 원인이 되며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호철은 전 부인과 딸에게 못 해준 것이 많아 마음이 쓰인다면, 영란은 자신을 키워준 언니네 가족 일에 돈과 시간을 들이면서 정작 신경 써야 하는 부부간의 관계가 소홀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란과 호철은 부부이지만 아직 서로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영란이 석이라는 요정을 자신의 카페로 데려가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부부의 관계가 현실적이라면, 석이라는 존재는 판타지다. 석이가 카페에 있을 때 매상이 두 배 넘게 오르지만, 영화는 이를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석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가족은 있는지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행운이 깃들게 만든다.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석이가 진짜 요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비롭게 표현된다. 또한 석이 같은 기적이 내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영화는 살면서 한 번쯤 기대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석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석이는 요정이 아닐 수 있다. 카페의 매출이 오른 건 우연일 수 있다. 아마도 요정은 경쟁에 치이고, 노동에 지친 우리가 불러낸 환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석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요정’은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가벼운 판타지와 현실과의 접점을 고려하며 경쾌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또한 큰 사건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전달하기에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인데, 영란과 호철을 연기한 류현경과 김주헌의 생활 연기가 없었다면 ‘요정’은 그저 그런 귀여운 영화로 기억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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