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시 새 슬로건의 충족 조건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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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국장·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교체 명분 생겨도 시민 공감 있어야
새것 없이 기존 슬로건 지우기 곤란
헷갈린 ‘부비·부기’ 캐릭터 정리부터
해양도시 정체성 지킬 디자인 필수

부산시 슬로건과 상징 마크는 바꿔야 할까. 교체한다면 해양도시 정체성은 얼마나 더 강화될 수 있을까. 부산시가 슬로건과 상징 마크를 바꾼다고 공언한 지 한 달이 다 됐다. 부산시는 그동안 도시 브랜드 공식 플랫폼으로 ‘온라인 소통채널 상상 온’을 개설했고, 지난달 27일 시민 8192명으로부터 1만 3060개의 키워드를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예정대로라면 12일 슬로건에 대한 시민 공모 결과도 나온다. 어떤 후보작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부산시는 슬로건 후보작 선정에 이어 새해 1월 상징 마크 후보작을 뽑은 뒤 선호도 조사를 거치면 늦어도 3월에 도시 브랜드 리뉴얼 선포식을 가질 수 있단다. 국제박람회기구의 2030세계박람회 현지 실사 일정에 맞춘 듯하다.


부산시의 슬로건 교체 추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2018년 시장 취임에 앞서 새 슬로건에 대한 시민 공모부터 실시했고, 680여 건의 후보작을 접수했다. 하지만 ‘30여 년 만의 지방권력 교체’라는 나름대로 명확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존 ‘다이내믹 부산’이란 슬로건을 바꾸지 않았다. 이 슬로건은 2003년 안상영 전 시장 때 확정했는데, 당시 안 시장 구속으로 부시장이던 오 전 시장이 직무대행을 하면서 직접 승인했다. 그 스스로도 나중에 기자들 앞에서 “애착 때문에 바꿀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슬로건과 함께 개편 대상이 된 마름모꼴의 부산시 상징 마크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1995년 3월 지정됐다. 갈매기와 오륙도, 산, 바다, 강이 기본 콘셉트다. 상징 마크는 부산시가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뀐 게 제작 계기가 됐다.

상징 마크가 지정되고 석 달 뒤 부산시 마스코트 ‘부비’가 탄생했다. 이는 ‘부산 비전’의 줄임말로 요즘 부산시가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부기’와는 다르다. 공식 마스코트 ‘부비’는 밝고 희망찬 태양과 출렁이는 바다 물결을 모티브로 삼은 반면 홍보용 캐릭터 ‘부기’는 갈매기를 형상화했다. 마스코트보다 홍보 캐릭터가 더 활용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것부터 교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식 마스코트와 홍보 캐릭터를 따로 둘 필요가 없어서다.

문정수를 필두로 안상영, 허남식, 서병수, 오거돈으로 민선시장이 이어졌으나 부산은 그동안 아무도, 어느 것도 바꾸지 않았다. 바꿀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라 확실한 대안으로 시민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다른 도시는 사정이 달랐다. 시장 교체가 곧 슬로건 변경이라고 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그럼에도 슬로건 교체 이유는 모두 ‘도시 브랜드 강화’였다. 서울시와 강원도는 각각 7차례나 바꿨다. 그럼에도 효과를 거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예산만 수십억, 수백억 원을 쏟아부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교체 명분으로 삼는다. 부산시가 주도한 도시 브랜드 리뉴얼 조사에서 응답자 71%(710명)가 새로운 브랜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명분은 그렇다고 쳐도 아직 새 슬로건이 시민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닌데 기존의 ‘다이내믹 부산’은 부산시 홈페이지를 포함해 각종 홍보에서 벌써부터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부산 먼저 미래로’가 차지했다. 마치 시민 동의를 얻어 새로 선정한 슬로건처럼 보인다. ‘부산 먼저 미래로’는 지난해 4월 박 시장이 후보 때 인수위원회 격으로 설치한 ‘부산미래혁신위원회’의 출범 슬로건일 뿐이다.

부산미래혁신위원회에 대해 해양인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참여한 인사 중 상당수가 박 시장 취임 직후 중용됐거나 예정되고 있지만, 전체 46명 중 해양수산계 인사는 한 명도 없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해양특보 신설 요구에 박 시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가 내세운 도시 비전 실현을 위한 6대 도시 목표 중 금융, 디지털, 친환경, 문화관광은 있어도 해양이란 단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비공식 슬로건 하나에도 해양인들이 예민해지는 이유다.

부산시 슬로건과 상징 마크는 두 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오래된 것을 버릴 때 그 이상의 효과를 반드시 기대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해양도시란 정체성이 훼손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도시 슬로건 중 성공한 사례로 미국 뉴욕의 ‘아이 러브 뉴욕’이 꼽힌다. 1975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에게 희망을 주자는 취지에서 뉴욕주가 기획했고, 뉴욕 출신 그래픽디자이너(밀턴 그레이저)가 제작했다. 취지부터 훌륭하고 시민 누구나 공감할 디자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 부럽다. 우리도 그럴 자격이 있다.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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