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주민 의견 수렴 공청회… ‘졸속’ 반복 우려
한수원, 올 다섯 차례 계획
주민 등 반발로 두 차례 무산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2호기에 이어 고리3·4호기의 수명 연장을 추진하는 등 ‘원전 드라이브’를 이어가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가 사실상 사업자 입맛대로 운영될 여지가 커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리2호기 수명 연장(계속 운전) 절차를 추진하는 한수원은 부산·울산·경남 양산의 16개 시·구·군을 대상으로 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공청회를 올해 다섯 차례 계획했지만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반발로 두 차례나 무산됐다. 현재 공청회를 다시 열기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현행 원자력안전법은 주민 5명 이상 30명 미만의 의견 제출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사업자와 지자체가 장소, 일시 등을 협의해 공청회를 열 수 있다. 그러나 입장 방식, 대상 등 공청회 진행 절차에 대한 세부 지침이 없어 분쟁이 일어나기 일쑤다.
실제 지난달 30일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한수원은 군 주민만 1층 공청회장에 입장하도록 했다. 나머지 인원은 건물 3층에 마련된 방청석에서 TV 화면으로 공청회를 보도록 했다. 이러다 보니 공청회장으로 입장하려던 시민단체 회원과 이를 막으려는 경호 인력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비례) 국회의원이 입장 방식을 두고 항의하자, 한수원은 양 의원과 보좌진만 1층 공청회장으로 입장시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했다.
지난달 25일 부산진구에서 열린 공청회의 경우 한수원은 대상 지역 주민이 아니어도 공청회장에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가 단상을 점거하자 한수원은 돌연 진행 방식을 바꿨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입장 방식을 바꾸고진행 시간도 마음대로 축소하는 방식으로 공청회에 참여한 시민을 사실상 들러리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자체적인 공청회 매뉴얼상 지역 주민만 공청회장에 입장할 수 있지만, 부산진구 사례는 안전사고 등을 우려해 예외적으로 출입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청회가 거듭 파행하면서 국회 차원에서 공청회 방식과 관련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의 경우 수명 연장처럼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 사업자가 아닌 규제 기관이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한다. 또 지역 주민이 전문가에게 용역을 맡길 수 있도록 지원한다.
양이 의원은 “우리나라는 사업자가 공청회를 주관해 주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캐나다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민 의견 수렴을 주도하는데, 우리도 법 개정이 필요한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