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늑대가 몰려온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형균 부산테크노파크 원장

스타트업, 플랫폼 비즈니스 개척
전통적 업종 구분 무참히 파괴
부산 도시공간·문화에 매력 느껴
지산학 정책으로 기업 뒷받침 필요
부산창업청, 투자 공공플랫폼 돼야

늑대가 몰려오고 있다. 전 세계 4억 마리가 떼를 지어, 거침없이, 빠르게 달려온다. 기존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생태계를 급속히 만들고 있다. 바로 스타트업 얘기다. 방 하나 소유하지 않은 에어비앤비는 창업 10여 년 만에 수십 년간 브랜드를 쌓아 온 힐튼호텔의 자산가치를 훌쩍 넘어섰다. 식당 하나 없는 배달의 민족은 수십 년간 명성을 지켜 온 식당업계의 비즈니스 구조와 문법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디즈니로 상징되는 100년 전통의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생산, 유통구조를 넷플릭스는 4년 만에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있다. 늑대의 속성을 똑 닮았다. 그것도 변종의 늑대(김영록, 〈변종의 늑대〉)들이다.


이들은 주로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전통적 업종 구분을 무참히 파괴한다. 이들에게 제조, 서비스, 금융업종 구분은 의미가 없다. 기업 성장 속도는 기존 기업의 3~5배 정도 더 빠르다. 전통기업이 기업가치 1조 원대에 도달하는 기간은 평균 21년이 걸렸다. 이에 비해 플랫폼 스타트업은 평균 6.5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기업 인수가 이루어진다. 합병이 번개처럼 일어난다. 스타트업 투자집단과 성장 촉진 집단이 별도의 업종군으로 만들어져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플랫폼과 디지털이 결합한 신산업의 대전환은 우리 사회의 수도권 집중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스타트업 기업들이 활성화된 2015년은 우리 사회에서 수도권 집중의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해로 기록될 것이다, 꾸준히 증가하던 수도권 집중도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기존 제조업보다 훨씬 기술집약, 인재집중, 도심밀집형이다 보니 수도권 선호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이들 늑대의 질주는 신발, 목재, 건설, 조선, 전자 등 우리나라 경제성장 연대기를 대표하는 산업정책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기존 제조업의 입지 선호는 산업용수(用水), 노동력, 물류가 좌우했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입지 선호는 자유로운 도시문화, 특화된 인재풀, 네트워크 잠재력, 투자자들과의 교류 기회가 결정한다. 기업지원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자금, 기술보다 인재를 원한다. 문화를 원한다.

이들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선호하는 입지 요인에 부산은 어떨까? 우리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 중의 하나가, 전국의 스타트업들이 부산의 자유로운 도시공간과 문화를 매우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특화된 인재풀과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지산학(地·産·學) 정책이다. 기업의 시장주도 욕구를 적극 지원하고, 대학의 기술개발력을 기업현장과 직접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청년의 잠재력을 지역기업을 통해 실현하는 선순환구조에 지자체가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역내재적 공급가치사슬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부산의 전략적 선택이다. 그동안의 그렇고 그런 산학협력 정책의 아류가 아니다. 부산만의 문화, 인재, 네트워크, 투자를 위한 기업지원책이자 교육정책이며 산업전략이다.

벌써 몇몇 기업과 대학, 산업 영역에서 꿈틀거림이 있다. 세계적 에너지 전환 기술을 주도하는 환경기업의 부상, 서비스와 제조영역을 융합한 세계적 커피팩토리의 등장이 심상찮다. 지역의 13개 대학이 협력하는 파워반도체 공유대학, 지산학 브랜치들 간 융합적 비즈니스 네트워크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유의미한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투자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는 지속성과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이를 매개하는 메신저가 필요하다. 새로 만들어질 부산창업청은 초기 투자뿐만 아니라 후속 투자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스케일업 투자의 공공플랫폼이 될 것이다. 결국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정책과 지산학 정책은 하나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전국과 아시아 늑대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부산 전역에서 들리는 날이 올 것이다. 산업계의 늑대가 몰려온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