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바보야, 문제는 돌봄이야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돌봄 서비스의 사회적 요구 증가
팬데믹 공적 서비스 취약성 환기
열악한 여성 노동자 현실과 연관
돌봄 노동자 저임금 고용 불안 심각
시장 공약 사회서비스원 설립 하세월
모두를 살리는 돌봄, 핵심 정책 돼야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부산에서 노후를 보낼 것이다. 그 전에 부모님의 노후부터가 걱정인데, 자식들을 키워 내고 생계를 책임지시느라 여기저기 안 아프신 곳이 없다. 가끔 연차를 내어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지만, 지속적으로 도움이나 간병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을 안 해 본 자식은 없을 것이다. 유능한 직장 여성인 나의 동료는 아이를 낳고 1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했다. 아이를 돌보는 데에는 친정 엄마 찬스를 썼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직장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가 골병이 들었다. 아이는, 그리고 어머니는 누가 돌봐야 할까? 결국 동료는 직장을 포기했다.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사회는 누구나 돌볼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가능한 법이다. 과거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주로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던 돌봄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고령화 사회, 가족 구조의 변화, 공적 돌봄 서비스에 대한 욕구 증가로 꾸준히 공적 서비스로 변화해 왔다. 출산과 육아의 문제만큼이나 돌봄은 이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현실은 육아와 돌봄 모두 여성 노동자의 자리를 위태롭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공적 돌봄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난 바 있는데, 많은 여성들이 육아나 돌봄의 문제로 직장 생활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돌봄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공적 돌봄 역시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돌봄 노동자의 92.5%가 여성이다.
부산시의 경우 돌봄 실태 및 돌봄 노동자의 실태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최근 부산여성노동포럼 주관으로 ‘요양보호사의 노동 인권,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부산의 돌봄 현실, 그중에서도 돌봄 노동자의 현실을 중심으로 실태조사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반가운 일이었다. 부산여성노동포럼은 부산 지역의 다양한 여성들 앞에 놓인 노동환경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짚어 보고 해결 방안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공론장을 만들어 가자는 취지로 생겨났다. 첫 번째 주제로 돌봄 정책을 제시하게 된 것은 그만큼 부산에서의 돌봄 노동의 현실 개선이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노동인권연대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이번 부산시 요양보호사 실태조사는 부산시 재가장기요양기관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 216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전국 조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돌봄 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초과근무수당이나 장기근속장려금은 현실성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부당 대우 등 노동환경의 문제도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언어폭력 경험 37%, 기타 비인격적 대우 38.5%, 신체 폭력이나 성희롱 성폭력 경험도 20% 가까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부당 대우 가해자의 경우 서비스 이용자 및 그 주변인의 비율이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토론자들은 부산시가 얼마나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무관심한지 지적하기도 했다. 일례로 부산시의 요양 시설 종사자 복지수당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2008년 6월 이후 근무자에게 지급하는 복지수당은 월 6만 원으로 전국에서도 최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회복지법인에만 해당하며 60세 미만자에게만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요양보호사들 상당수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업체에 고용되어 있으며 평균 연령이 60세임을 감안할 때 처우 개선 제도가 얼마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부산에도 돌봄 노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기요양 관련 조례는 마련되어 있지만, 돌봄 현실과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반영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요양보호사인 장기요양요원, 즉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나 실태 조사 항목은 빠져 있는 상태다. 또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서비스원이 있지만 부산은 시장 공약인데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서울, 경기, 울산, 경남 지역에는 돌봄 노동자를 위한 장기요양지원센터가 있어 돌봄 노동자의 권리 침해에 관한 상담 및 지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지원, 건강 관리를 위한 사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의 진입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지금, 대도시 중 최초로 고령사회에 진입한 부산의 경우 돌봄은 더욱 더 중대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부산의 별칭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조례 개정과 정책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모두를 살리는 돌봄이 부산의 중요한 정책 과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부산시와 시의회의 책임 있는 역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