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시 부산, 중소형 영화제 예산 3분의 1 ‘통편집’
독립영화제 등 4개 평균 33% ↓
영화 생태계 다양성 약화 우려
삭감 기준 불명·정치 개입 의혹도
시 “축제 예산 10% 감축 기조 탓”
부산시가 내년 ‘중소형 영화제’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부산 영화 생태계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축제 사업 예산을 10% 줄이는 기조에 따라 삭감했다는 입장이지만, 중소형 영화제 4개 삭감 폭이 평균 33%로 높은 데다 명확한 삭감 기준도 제시하지 못해 지역 영화계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15일 〈부산일보〉가 입수한 ‘부산시 2023년도 영화·영상 관련 예산안’에 따르면 4개 중소형 영화제 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삭감됐다.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의 경우 5억 원에서 3억 5000만 원, 부산푸드필름페스타는 1억 5000만 원에서 1억 원, 부산독립영화제는 1억 원에서 5000만 원, 부산평화영화제는 3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줄었다.
대규모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은 58억 원으로 동결됐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예산은 4억 3000만 원에서 4억 50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영화·영상 예산(인프라, 페스티벌, 산업) 총액은 344억 7700만 원에서 352억 4800만 원으로 늘었다. 일부 영화제와 부산시 전체 예산은 증가했지만, 4개 중소형 영화제는 평균 33% 삭감됐다.
지원 예산이 줄어든 영화제 관계자들은 삭감 기준부터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영화 상영과 행사 개최가 어려워지고, 부산 영화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상황을 우려한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오민욱 대표는 “20여 년을 이어 온 부산독립영화제는 부산에서 만든 영화가 관객을 만나고 경쟁하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며 “올해도 예산이 너무 부족해 스태프 희생이 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올해 5개 단편 제작을 지원했는데 내년에는 어려울 듯하다”며 “부산시가 추진하는 ‘15분 도시’도 중요하지만, 15분짜리 영화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부산푸드필름페스타 박지연 부집행위원장은 “음식과 영화를 접목한 영화제를 열면서 일부 프로그램은 빠르게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며 “예산 삭감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 기준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고려로 인한 결정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영화제를 진보 성향으로 분류해 예산을 줄였다는 주장이다.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이사장, 부산푸드필름페스타는 황교익 칼럼니스트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내년에 교육 체험 행사, 국제회의와 포럼 개최가 어려워진 상황인데 예산 삭감 이유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부산평화영화제 박홍원 집행위원장은 “평화영화제는 이념적 지향과 관계없이 전쟁, 갈등, 폭력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운영된다”며 “부산시에서도 좋은 행사라며 예산 증액을 얘기했는데 도리어 줄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내년 행사·축제 예산을 올해보다 10% 줄이는 기조에 따라 영화제 예산도 삭감했다는 입장이다. 시는 올해 ‘15분 도시’, 출산·양육, 안전 분야에 예산을 우선 편성했을 뿐 정치적 판단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40주년을 맞아 예산 지원을 소폭 늘렸다고 밝혔다.
부산시 이현정 영상문화팀장은 “전체 총액은 부산영화체험박물관 등 임대형 민간투자 사업 예산이 많이 반영되면서 늘어났다”며 “영화제 관련 예산도 증액하려 노력했는데 조정 과정에서 깎였다”고 말했다.
부산시의회 행정문화위원회 측도 내년 축제 관련 예산은 전반적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올해 민선 8기 선거에서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위원들이 교체됐지만, 정치적 판단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부산시의회 김효정(북구2) 의원은 “부산시에서 내년 축제 관련 예산은 거의 다 줄어서 넘어왔다”며 “부산시에서 공약 사업도 어렵다고 말해 살림을 줄였을 뿐 정치적인 고려가 있는 건 아니다”고 밝혔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