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사람아, 아 사람아
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 영정도 없어
정부, 정치적 책임 외면으로 일관
측은지심 상실하면 증오로 빠져
특수본, 고위직 수사 제대로 못해
보수정치인 막말 입에 담기도 민망
사람 도리·인륜에 기초한 대응 절실
사람은 동물과 다르다. 동물은 사람이 지닌 이성과 측은지심, 그리고 증오와 혐오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과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성과 측은지심을 상실하고 증오와 혐오에만 빠진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고 동물도 아니다. 그런 이들을 우리는 비유적으로 짐승이라고 불러왔다.
이태원 참사가 되살아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국가 애도 기간이 있었지만, 유가족들의 의사 확인 없이 마련된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영정도 위패도 없었다. 정부는 유가족들이 단체로 행동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유가족들에게 서로의 전화번호도 알려 주지 않았다. 정부는 유가족들이 모이고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비정한 정부의 의도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사람이 슬프면 슬픔을 표출하고 함께 나누고, 대다수 사람이 분노하면 분노의 대상을 징계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고 사람의 도리고 인륜이다. 자고로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유가족들이 모여 슬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게 했고,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책임자 문책과 처벌에도 인색하고 느렸다. 대통령은 명확한 진상규명 이후 책임자 문책과 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대통령의 의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질 수 없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이는 유가족과 국민의 정서와는 너무 다른 판단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도 묻고 법적 책임도 물으라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대통령은 해외순방길에 나서며 재난 안전 관리 총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을 오히려 어깨를 두들기며 격려했고, 역시 책임지고 문책받아야 할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등 고위직 공무원이 아직도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진두지휘 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특별수사본부가 이들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현 정부의 의도와 태도는 누가 봐도 상식과 도리, 인륜과는 거리가 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수 정치인들의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다. 장제원 의원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애초에 합의해 줘서는 안 될 사안이었고, 민주당이 요구한 국정조사는 정권 흔들기와 정권 퇴진 운동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이리 지지부진한데, 정쟁을 빌미 삼아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핵심 윤핵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권성동 의원은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고, 송언석 의원은 이태원 참사 현장 300m 거리에서도 시신이 발견되었다면서 참사의 원인이 압사가 아니라 마약에 있다는 자신의 입장을 반복했다.
권성동 의원의 말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대다수 건전한 시민단체에 대한 악의적인 모욕이다. 이태원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아직도 그날의 악몽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이런 아픔을 다시 후벼 파는 발언을 한 것은 정말이지 비인간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특별수사본부는 참사의 원인에 마약 관련성은 없다고 밝혔다. 송의원은 이런 경찰 수사 결과도 부정하는 황당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짐승의 언어이고 폭력이다. 어쩌다 우리 정치가 이렇게 보수와 진보라는 양 진영으로 나뉘어 인간성마저 상실했는지 암담하다. 이들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대응 실패에 의한 압사가 아니라 사적인 축제나 마약 등에 의한 개인적인 일탈 사고다. 그러니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책임이 없다. 세월호 참사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당과 시민단체와 유가족들이 있다. 이들의 정치적 야욕에 휘둘리면 안 된다.
이태원 참사는 이들의 주장처럼 정쟁의 문제,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이 많은 젊은이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 그런 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사람의 도리와 인륜을 거스르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그런 비인간적이고 매정한 정치는 해서도 안 되고 오래 갈 수도 없다.
“매일 밤 우리 아이 유골함을 끌어안고 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이런 절규가 모여 추모가 되살아나고 있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인 시민분향소가 이태원에 마련된 것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 도대체 이 나라 정치가 어쩌다 이리 인간성마저 상실한 짐승의 정치가 된 것인가? 한탄과 한숨만 나오는 좌절의 시절이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보다 사람의 도리와 인륜에 기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