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원도심 되살릴 유산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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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곳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문화재청 잠정 목록 최종 결정
역사와 문화 간직한 근대유산들
방문객 발길 끌도록 보존·활용 땐
원도심 부활 ‘터닝 포인트’ 기대

지난 15일 부산항 1부두를 포함한 피란수도 부산의 근대 유산 9곳이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대상으로 최종 결정됐다. 사진은 옛 창고를 품고 있는 부산항 1부두 일대 모습. 부산일보DB 지난 15일 부산항 1부두를 포함한 피란수도 부산의 근대 유산 9곳이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대상으로 최종 결정됐다. 사진은 옛 창고를 품고 있는 부산항 1부두 일대 모습. 부산일보DB

최근 뜻깊은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문화재청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최종 결정됐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그동안의 ‘조건부’ 꼬리표를 털어 내고 5년 만에 확정지은 것이라 의미가 크다. 한국전쟁은 20세기 냉전 시대 최초의 전쟁으로, 세계사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당시 ‘천일 수도’였던 부산은 지금도 살아 있는 역사의 증거물이라는 사실. 이번 등재 결정은 이를 웅변하는 소중한 성과다.


이번에 결정된 피란 유산은 경무대·임시 중앙청·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서구), 국립중앙관상대·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항 제1부두(중구), 하야리아 기지(부산진구), 유엔묘지·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남구) 등 9곳이다. 긴급한 정부 유지와 국가 운영의 기능을 담당한 건축물, 전국의 피란민들을 받아들인 포용의 장소, 정부와 유엔 등의 국제 협력이 이뤄진 공조의 현장이 두루 걸쳐 있다. 한국전쟁 관련 유산이 국내에 적지 않지만 피란수도 부산은 단 한 번의 폭격도 받지 않은 유일한 도시라는 점까지 더하면 세계유산으로서 전혀 손색없다.

피란수도 부산은 이로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특별한 것은 도심지 안에 있는 유산을 대상으로 한 첫 사례라는 점, 그것도 근대유산은 처음이라는 점이다. 향후 국내의 근대유산 보존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감을 높인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문화재청의 우선 등재목록 선정, 등재신청 후보 및 등재신청 대상 선정, 그리고 유네스코의 예비심사와 자문기구 평가 등 국내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란수도 유산 중에서도 핵심적인 장소가 바로 부산항 제1부두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근대유산의 원형을 품고 있는 까닭에 그 가치가 높다. 그동안 1부두 일대의 문화재 지정에 주저하던 부산항만공사(BPA)가 인식을 바꿔 근대유산 보존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건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1부두 소유자인 BPA는 1부두의 문화재 등록 신청을 낸 상태다. 소재지 관할 관청인 중구청이 이를 검토하느라 두 달가량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더딘 발걸음이 아쉽다. 문화재 등록이 원도심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인구소멸을 겪고 있는 부산 원도심의 처지는 지금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11월 기준으로, 중구의 인구는 전국 광역시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4만 명 선이 무너졌다. 인구 감소세는 부산 전체와 비교해도 3배나 빠른 속도다. 침체를 벗어나 새로운 활력소를 찾는 것은 이 지역 절체절명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일부 상업지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 제한을 완화해 도심 개발 촉진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경쟁력을 확보해 지역을 되살리려는 노력과 소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다만 원도심 부활이 반드시 경제적 성과와 생산성 위주의 개발로만 가능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도심 안의 역사와 문화, 근대적 유산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원도심을 살리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항구도시 빌바오, 프랑스 문화도시 낭트와 같은 유럽의 도시들이 그렇게 변신에 성공했다. 부산 원도심도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지역의 유산들을 잘 보존한다면 도시의 쇠락을 막는 건 물론이고 관광 자원으로, 그리고 미래 먹거리로 삼을 수 있다. 인구소멸을 겪는 지역이 되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문화유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주 인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체류 인구’를 다양하게 관리하고 확대해 나가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부산시가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역사와 문화유산, 문학적 스토리, 음악과 미술, 축제 등 다양한 방식의 지역발전 비전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기초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지역 정체성을 잘 파악해 자신만의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방향으로 개발 방식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개별 건축물의 사업성 향상에만 치중하는 경제 논리로는 되레 지역 이기주의에 발목 잡힐 위험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원도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구와 함께 3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서구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아미동 비석마을을 보존·관리하기 위한 지구단위계획 용역을 수립 중인 서구청은 서구 지역 전체를 피란 생활 박물관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의지가 남다르다. 부산은 역사의 흔적과 기억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근대 유산을 품고 있다. 그것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시대를 여는 보편적 상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보다 많은 국내외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원도심의 미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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