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범어사…오래된 절집에는 명작이 지천이더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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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명작/노재학

<산사명작>. 불광출판사 제공 <산사명작>. 불광출판사 제공

<산사명작>은 마음으로 꼽을 수 있는 사찰의 명작을 소개한 책이다. 그 명작들은 거룩하다고 한다. 사진 촬영과 글로 한국의 단청을 집대성하고 있는 노재학 사진가가 23꼭지의 글을 썼다. 그는 “오래된 절집은 명작 지천”이라고 한다.

절에 가면 구불구불한 건물 기둥이 많지만 화엄사 구층암 기둥은 모과나무 모습 그대로다. 하나도 다듬지 않은 채 수피만 벗겨진 날몸 그대로의 모과나무다. ‘그 모과나무 원형은 수백 년간 외부환경과의 투쟁 속에서 역학적으로 가장 안정되고 최적화된 물리 구조’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는 유명하다. 적천사 두 그루 은행은 두 분의 금강역사처럼 서 있다고 한다. 500~800년 된 암·수나무다. 그 자체가 우주이고 경전이며 무정의 설법전이라고 한다. 노랗게 물드는 계절, 적천사 은행은 ‘바야흐로 가을의 전설’이 된다고 한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고귀한 단순, 고요한 위대의 조형 정신이 금강처럼 빛난다고 한다. 범어사 대웅전 닫집은 집 속의 집이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심오한 꽃 속의 꽃, 우주 속의 우주라고 한다. 두 개의 활주로 떠받쳐진 그 닫집에는 열 개의 내림기둥이 공중에 떠 있다. 용, 연꽃, 비천상 표현으로 아름답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저자는 “이 장엄 속에서 고요한 적멸의 세계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경기도 안성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는 특별함을 감추고 있다.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 배에는 특이하게 남사당패가 타고 있다. 조선 후기 남사당패의 근거지 중 한 곳이 청룡사라는 사연 때문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처나 보살의 자리인 뱃머리 부분에 매우 특이하게도 온갖 치장을 한 여성이 그려져 있다. 저자는 이 여성을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청룡사 스님들 손에 키워져 남사당패 꼭두쇠가 된 바우덕이가 아닐까, 라고 추정한다. 이야기를 통해 명작의 속모습이 그려지는 순간이다.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은 8세기 통일신라 화강암 불상이다. 저자는 이 석불 자체를 경주 남산의 축소판으로 본다. 남산의 보편적 마애불 양식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흙바닥에 맨발로 서 있는 두 보살상은 특히 겨울철에 발 시리게 보인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다는 것인데 역으로 보살이 시리면 중생도 시릴 수 있다고 한다. 이 사면석불의 아미타본존불, 약사여래불은 오래 보고 있으면 세상 바깥으로 몸을 일으켜 나오는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단다. 나무로 만든 입체적 후불탱이 ‘목각탱’인데 그것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말이 필요 없이 보기만 해도 깊은 감동과 신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각탱을 소개해놨는데 한국 사찰의 목각탱들은 국보 보물 반열에 들어 있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안정적인 대통일장의 구조로 오백 년 푸른 방장이 불립문자로 나투신 모습이란다. 저자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선암사 통도사 화엄사 백양사의 고매(古梅)를 한 번 보시라고 권한다. ‘나면서 알기도 하고, 배워서 알기도 하고, 고생하고 노력해서 알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알고 나면 매한가지다.’ 중용에 그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그 매한가지를 펼쳐보이고 있다. 한편 저자는 31일까지 부산시민공원 다솜갤러리에서 ‘단청, 세세생생의 빛’ 사진전을 열고 있다. 노재학 지음/불광출판사/488쪽/3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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