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 해외 입양 잔혹사, 이제라도 제대로 밝혀야
진실화해위, 인권 침해 조사개시 결정
부끄러운 역사의 그늘 걷어 내는 계기로
지난 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국의 해외 입양 아동의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입양인 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개별 사례에 한정한 결정이긴 하지만 해외 입양 문제를 공식적으로 조사하는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큰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다. 우선 1960년부터 1990년까지 네덜란드 등 6개국에 입양된 34건의 사례에서 신분 조작 사실을 밝혀 내는 것이 조사의 목적이다. 우리나라는 6·25전쟁 이후 폐허와 가난만 남은 고난의 시기를 겪으면서 전국의 무수한 아동들을 해외로 보낸 아픈 역사가 있다.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처를 양지로 끌어내 제대로 된 규명 작업의 단초로 이어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산일보〉가 이번 조사개시 결정과 관련된 입양인 단체를 취재한 내용은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아동들은 서방 국가로 입양되는 과정에서 무수한 인권 침해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아동이나 연고자 없는 고아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있음에도 고아나 제3자 신분으로 조작되거나 유괴 등의 범죄 피해를 입은 경우도 허다했다. 심지어 멀쩡하게 살아 있는 아이를 사망 처리하거나 아동을 납치해 해외로 입양시킨 사례도 있었다. 해외로 이송되다가 숨지거나 입양 가정에서 각종 학대와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등 불법적 인권 침해 사례는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해외 입양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때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상대적으로 복지 시설 등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특수성이 부산을 아동 수출의 전진 기지로 만들었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부산의 특정 시설이 연루돼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실제로 이 시설에서 아이들의 해외 입양을 위해 부모가 친권을 포기한 부모가 상당수였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록을 위조하고 서류를 허위로 꾸미는 일이 다반사였던 모양이다. 당시 입양 아동들이 얼마나 참혹한 ‘인권 사각’에 놓여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번 진실화해위 조사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이라 할 해외 입양 아동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해외 입양 아동이 2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은 최악의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부산의 특정 입양기관이나 복지시설에서 대량으로 발생한 불법적 입양 사례들에 대한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그 내막이 철저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향후 정부와 부산시의 역할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외 입양 잔혹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부끄럽고 어두운 역사의 그늘을 걷어 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