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깃드는 삶의 자리마다 메리 크리스마스!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첼레스타(celesta)는 타악기다. 피아노와 비슷한 볼품을 갖추고 있다. 건반으로 해머가 철판을 때려 청아한 소리를 낸다. ‘천상의’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셀레스트(celeste)에서 유래했을 만큼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음색을 빚어내는 악기다. 그만큼 종소리처럼 맑고 신비로운 음색을 자랑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의 영화음악 ‘헤드위그의 테마’는 흰올빼미 헤드위그를 표현하기 위해 이 악기를 사용하여 마법의 이미지를 드높였다. 첼레스타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인형’이다.
이 발레는 호두까기인형이 사악한 생쥐대왕을 물리치고 왕자로 변해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첼레스타의 음색은 ‘사탕요정의 춤’에서 가장 돋보인다. 얼음 위를 조심조심 걷는 듯한 발레리나의 몸짓을 따라 선율이 흐른다. 1891년 미국 카네기홀 개관 축하공연을 다녀오는 길에 파리에서 이 새로운 악기를 처음 접한 뒤, 작곡 중이던 ‘호두까기인형’의 동화 같은 분위기를 이 악기로 한껏 살리고자 했다. 1892년 초연은 실패에 가까웠다. 안무의 완성도가 떨어진 데다 사탕요정의 춤이 형편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의 마법을 뮤즈가 질투라도 했던 것일까.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차이콥스키의 발레 가운데 가장 자주 상연된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널리 사랑받는 레퍼토리다. 최근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 올렉산드르 트카첸코가 상연금지를 주장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호두까기인형은 왕이나 영주, 군인과 경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견고한 세계를 쉽게 깨부술 듯한 강력한 권위와 힘을 상징한다. 이들이 호두나 깨고 있다니 한심하기도 한데 정작 호두조차 깨지 못한다. 환상의 나라 왕자이거나 견과의 알맹이를 꺼내주는 실용적인 도구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장식물로 자리를 잡았다. 악령과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선물로 주고받기도 한단다.
마법과 환상은 때로 엄혹한 현실을 견뎌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이다. 이날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숱한 고난과 아픔을 뒤로하고 위로와 희망이라는 선물을 받는 날.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 어쩌면 어른이 되어버렸을 우리들도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두고는 선물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도 좋다. 산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 했던가. 내내 울었던 이에게도, 어쩌면 지금도 울고 있는 이에게도 산타가 가만히 어루만지며 선물을 내려놓고 갈 듯한 설렘으로 가득한 밤이다. 이 밤에는 호두까기 인형이 이끄는 대로 꿈의 궁전에 깃들어 영묘한 첼레스타의 음색에 푹 빠져도 좋을 일이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