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가 ‘일상’이 된 한 어린이집 [사건의 재구성]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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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던지고 흔들기 다반사
아동 정신과 치료에 부모는 ‘멍’
울산지법,원장·교사 11명 처벌

2020년 1월 울산 중구 한 가정집. 아이는 엄마의 큰 소리에 스스로 벽 쪽으로 가더니 손을 들고 서 있었다. 엄마는 아이가 한 번도 보이지 않던 행동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서로 아이의 안부를 확인했다. 만 세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서 ‘선생님이 무섭다’, ‘손을 때리고 벌을 준다’는 말이 이어졌다.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을 찾아가 CCTV를 확인하자, 의심은 사실이 되고 분노로 바뀌었다.

경찰이 장기간 수사로 밝혀낸 사실은 더 충격이었다. 학대나 방조 행위가 확인된 가해자만 원장과 보육교사를 합해 모두 11명. 이 어린이집 보육교사들 대부분이 가해자이자 방관자, 암묵적 동조자였던 셈이다. 학대가 빈번하게 이뤄져도 누구 한 명 말리거나 신고하는 이가 없었다.

학대가 일상이 된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19년 4월 어린이집 보육교사 A 씨는 2살 원생의 양팔을 잡고 16초 동안 강하게 앞뒤로 흔들었다. 피해 원생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고, 또래 원생들이 이 모습을 쳐다봤다. 그해 10월에는 다른 원생(2)을 놀이방에 데리고 들어가 벽 쪽에 앉히고는 아이가 앞으로 나오면 뒤로 물러서게 하는 등 20분간 다른 원생들과 놀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12월에도 자신의 근처를 지나는 3살 원생을 끌어당겨 양손을 잡아 원생의 얼굴 앞에서 2차례 손바닥을 부딪치게 하는 등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멈추지 않았다. A 씨는 그 무렵부터 2020년 1월까지 원생 10여 명에게 107차례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육교사 B 씨는 2019년 4월 2살 원생이 장난감을 들고 서 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원생의 양팔을 강제로 잡아당겨 바닥에 앉히고 울게 했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다시 팔을 거칠게 잡아당겨 교실 밖으로 내보낸 뒤 문까지 닫으려 했다. 피해 원생이 더 크게 울자 이번에는 아이의 팔을 잡아 교실 안 매트 위로 데려가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1~2살 원생 6명에게 64차례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육교사 C 씨는 같은 시기 2살 원생이 겉옷을 벗겨달라고 하자 팔을 때리고 멱살을 잡아 자리에 앉히곤 옷을 잡아 흔들며 혼냈다.

다른 보육교사들도 점심시간에 음식을 흘렸다는 이유로 원생의 숟가락을 뺏고 손을 잡아당겨 바닥에 넘어지게 하거나, 1살 원생이 잠에서 깨 발로 차자 원생의 오른발을 잡고 몸쪽으로 거칠게 눌러 발이 얼굴에 닿도록 하는 등 갖가지 학대를 일삼았다. 울고 있는 1살 원생에게 계속 밥을 연달아 떠먹여 급기야 아이가 기침하면서 밥을 뱉고 우는 일도 있었다. 이들 보육교사가 1년도 안 되는 기간 학대한 횟수를 합하면 총 449차례에 달한다.

울산지법 형사1단독 정한근 부장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울산 모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 A 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하고 40시간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 아동 관련 기관 5년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고 22일 밝혔다.

법원은 같은 어린이집 다른 보육교사 9명에게는 징역 8개월~1년에 집행유예 2년 또는 벌금 300만~500만 원을, 어린이집 원장에겐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경우 아동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서 되레 아동을 학대해 책임이 무겁고, CCTV를 확인할 수 없어 기소되지 않는 범행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어린이집 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보육교사들이 모두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깊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일부 피고인에게) 어린 자녀 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일부 피해 아동은 이 사건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그 부모들 역시 상당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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