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죽으면 다른 아이 구해 드릴게요” 해외 입양 잔혹사
피터 뭴러 DKRG 공동대표가 전하는 ‘해외 입양 민낯’
성사 수수료 챙긴 사설 입양기관
전국 조산소·병원서 아이 물색
거짓 고아 만들어 해외 보내기도
서류도 부실 정보 확인 막막
진실화해위, ‘흑역사’ 규명 기대
한국인 A 씨가 1974년 덴마크로 입양됐을 때, 덴마크 양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A 씨는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고, 온몸은 종기로 뒤덮였다. 한국의 입양기관은 생후 6개월이던 A 씨가 장거리 여행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고 했지만, 덴마크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직행한 곳은 현지 병원이었다.
상태가 점점 나빠진 A 씨는 덴마크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일본 뇌수막염을 앓던 것으로 확인됐다.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A 씨의 양어머니는 한국 입양기관에 전화해 절규했다. “내 아이가 죽어가고 있어요. 어떻게 좀 해 보세요.” 입양기관 직원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걱정 마세요. 그 아이가 죽으면 다른 아이를 구해 드릴게요.”
덴마크 입양인 B 씨는 수년 전 한국을 방문해 입양기관에서 자신의 입양 서류를 볼 기회가 있었다. B 씨는 그날을 계기로 친생가족을 찾아보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입양기관에 있는 B 씨의 정보는 그의 한국 이름과 생년월일, 출신지가 전부였다는 점이다. 해당 정보로 가족을 찾을 수 없던 B 씨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 방송사와 접촉했다. 방송에 출연하면 가족을 찾기가 쉬울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방송이 나간 뒤 그는 친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B 씨는 입양기관이 보관하고 있던 기록과 달리 실제 나이보다 한 살 어렸다. 게다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 아닌 부산이라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확인했다. B 씨는 “평생 나의 생년월일이 입양 서류에 있는 날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고 출신지도 달라 충격을 받았다”며 “입양기관이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고 분노했다.
최근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이 발표한 A 씨와 B 씨 사례는 한국 아동의 해외 입양 역사에서 나타나는 잔혹성과 인권 침해를 잘 보여준다. DKRG 공동대표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48) 씨도 생후 6개월 때 덴마크로 입양됐다. 변호사인 그는 지난해와 올해 봄 한국의 입양 전문가들과 함께 여러 세미나에 참석한 뒤 입양인이 겪는 고통과 한국 입양 시스템의 문제점에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성주(전북 전주시병) 의원이 지난달 23일 낸 보도자료를 보면 사설 입양기관은 해외 입양 부모로부터 입양 성사 때 건당 막대한 규모의 수수료를 받았다. 1988년 해외 입양 수수료는 건당 5000달러로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 4571달러를 웃돈다. 그해 입양기관이 벌어들인 수익만 3231만 5000달러로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22억 원에 이른다.
당시 사설 입양기관들은 전국 병원이나 조산소에 돈을 주고 해외로 입양 보낼 아이를 찾아나섰다. 특히 입양기관이 부모 동의 없이 아이를 고아로 만들어 해외로 보낸 사례도 나왔다. 고아가 입양되는 국가의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이 입양부모를 만나러 가던 중 기내에서 숨지거나 입양가정에서의 학대, 현지에서의 인종차별 등 입양인들의 인권 침해 사례는 차고 넘친다.
부실하게 작성된 서류는 이들이 성장한 뒤 친생부모를 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외 입양인의 41.7%는 기록이 부정확해 친생부모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이는 친생부모 정보를 알 수 없는 국내 입양인보다 1.4배 더 많은 것이다.
뭴러 씨는 “어제 친생가족을 찾은 한 여성 입양인과 얘기를 나눴는데, 친어머니는 아이를 낳은 뒤 아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아이는 멀쩡히 살아서 덴마크로 입양됐는데 말이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입양인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번에 조사를 시작하는 34건의 사례를 포함해 조사가 더 확장돼야 한다는 게 그들의 바람이다. DKRG는 스웨덴한국입양인네트워크(SKAN), 호주한국인진상규명그룹(AUSKRG)과 연대해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들 단체는 진실화해위원회에 4차례에 걸쳐 진상 조사를 신청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