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스포츠 워싱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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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축구 팬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끝났지만, 대형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 개최지를 둘러싼 불편한 이야기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대형 스포츠 행사 개최를 통해 개최국의 권위주의적인 측면과 인권 유린 등 부정적인 평판을 세탁하려는 이른바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의 경우 대회 개막 이전부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노동 계약, 성소수자와 여성 차별 등 인권 문제로 세계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하지만 카타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으며 꿋꿋이 대회를 치렀고, 덕분에 에너지 부국이라는 기존 이미지에다 스포츠 메카라는 장식(?)까지 더하게 됐다. 카타르는 이를 바탕으로 2023년 아시안컵, 2030년 하계 아시안게임 유치를 확정했고, 이어 2036년 하계 올림픽 개최까지 노리고 있다.

이전 사례로는 2008년 하계 올림픽, 2022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과 2014년 동계 올림픽, 2018년 월드컵을 연 러시아가 꼽힌다. 대형 스포츠 행사가 권위주의 국가의 이미지 홍보에 활용된 경우다.

그런데 최근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들에 이어 스포츠 워싱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체제 언론인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비판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2030년 월드컵 개최를 노리고 있는데, 카타르의 경우를 철저히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여기다 축구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 단적인 실례가 세계 최고의 스타 리오넬 메시를 사우디아라비아의 홍보대사로 영입한 것과 엄청난 금액으로 호날두까지 영입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모두 2030년 월드컵 개최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스포츠 워싱은 이제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는 듯하다. 덴마크의 한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10년 전부터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의 경우 민주주의 국가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더 자주 개최된 것으로 조사됐다.

아마도 이는 국제 스포츠 행사의 대형화 추세와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갈수록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국제 스포츠 행사의 개최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면서 그 빈틈을 권위주의 국가들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순수한 인간 정신에 바탕을 둔 연대와 평화를 지향하는 스포츠 행사가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차츰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못내 찜찜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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