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고려가요의 재발견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 은상곡인 이명우의 ‘가시리’는 기묘한 노래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고려가요 ‘가시리’의 서두가 서러운 음률로 펼쳐지다가, 후렴구가 돌연 ‘청산별곡’의 ‘얄리얄리 얄라셩’으로 바뀐다. 노랫말이, 각기 다른 내용의 두 고려가요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강렬한 선율이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건 ‘장미 가득한 저녁에’라는 이스라엘 전통 민요의 선율 때문이었다. 고려가요는 그렇게 자신의 온전한 곡조를 갖지 못한 채 남의 것을 차용한 절반의 미학으로 남아 있었다.
글로 남은 고려가요는 문학이지만 창으로 불리면 음악이 된다. 고려가요는 남녀 간 사랑 이야기 같은 민중들의 진솔한 감정을 담은 까닭에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음란하고 퇴폐적인 노래로 낙인찍기도 했다. 하지만 고려가요는 단순한 속요(俗謠)가 아니었다. 고려 왕조의 궁중음악 일부였고, 조선 시대에도 궁중의 어른들이 모인 엄숙한 자리에서 연주된 곡이었다는 견해가 최근 설득력을 얻는다. 실록 등을 보면, 성종·중종 때까지 꾸준히 고려가요가 연주됐음을 알 수 있다.
고려가요가 정악(正樂)인 가곡의 원류로서 유서 깊은 우리의 소리란 얘기다. 정악은 나라의 공식 행사에 쓰이던 궁중음악과 궁궐 밖 양반 계층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를 아우른다. 그중에서도 가곡과 가사·시조를 정가(正歌)라 했다. 이 정가의 성악곡은 민중들이 부르는 판소리나 민요·잡가와 구분된다. 정악은 앉아서 노래하고 민속악은 서서 노래한다. 고려가요는 이미 조선 시대에 정리·교정 작업이 이뤄져 많은 곡들의 악보가 남아 있다. 하지만 가곡이나 시조와 달리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7일 저녁 해운대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부산 가수 제민이의 음악회는 그래서 이목을 끈다. 고려가요만 골라 자신의 스타일로 악보를 재해석한 ‘국내 최초의 고려가요 독창회’라는 포부가 살뜰하다. 근래 들어 학자들의 연구와 고려가요의 복원은 더디나마 이뤄지고 있는데, 역시 민요보다는 호흡이 길고 가곡이나 시조에 비하면 한결 가볍고 감성적인 느낌이다. 역시 정가와 민속악의 중간쯤이랄까. 매서웠던 동장군의 심술도 누그러지고 옛 가락에 취해 여유로움을 찾고 싶은 연말연시다. 천년 세월을 잠자던 고려가요가 어떤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깨어날지 궁금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