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평 교회 건물서 11명 숙식… 샤워도 2~3일에 한번 [이방인이 된 아이들]

손희문기자 moonsla@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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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 된 아이들] <상> 위협받는 기본권

민감한 사춘기 아이도 입시생도
개인 공간 포기하고 공동생활
협소한 공간 탓 감염병 취약
지역아동센터 외 전담시설 없고
낯선 언어·문화 적응 지원 전무
어눌한 한국어에 따가운 시선도

지난 20일 부산 영도구 바울지역아동센터 기숙사의 한 방에서 사감이 중도입국 아동들을 돌보고 있다. 좁은 공간에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온 아이 5명이 모여 생활한다. 이재찬 기자 chan@ 지난 20일 부산 영도구 바울지역아동센터 기숙사의 한 방에서 사감이 중도입국 아동들을 돌보고 있다. 좁은 공간에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온 아이 5명이 모여 생활한다. 이재찬 기자 chan@

지난 20일 오후 8시 부산 영도구 영선동. 남항초등학교 후문에서 200m 정도 언덕길을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골목 끝에 2층짜리 작은 더사랑지구촌교회가 보였다. 교회 1층 교육관은 영도 바울지역아동센터가 운영하는 ‘중도입국 아동·청소년’ 기숙사다.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을 수용할 마땅한 시설이 없어 교육관을 전용한다.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부모의 국제결혼 등으로 한국에 정착하게 된 아이들이다. 현재 영도에 정착한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은 어려운 집안 환경에 시달리기 때문에 지역아동센터가 교육과 돌봄 등에서 가정의 공백을 대신 메운다.


■열악한 개인 공간

교회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옛 군대 막사처럼 20m쯤 되는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있다. 한겨울 바깥 온도가 그대로 전해진 복도는 냉기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공용 화장실에 가려고 잠옷 차림으로 방에서 나오자, 사감은 연신 “감기 걸리니까 겉옷 입어라”고 외쳤다.

첫 번째 방문에는 ‘초등3’이라 적힌 노란 종이가 붙었다. 초등학생이 모인 3번째 반이라는 뜻이다. 10평 남짓한 공간에는 낡은 2층 침대 3개가 놓여 있었다. 베트남, 중국 등에서 온 아이 5명이 생활하는 곳이다. 옷걸이, 청소기, 사물함, 식탁, 냉장고 등 살림살이가 두서없이 좁은 방 곳곳을 차지했다.아이들은 침대에 엎드린 채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며 하루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는가 하면, 방을 정리하는 사감 앞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머에요?”(뭐해요?) 등 어눌한 한국어로 재롱을 떨었다.

20여 평에 불과한 교회 건물 1층에는 방이 3개 마련돼 있다. ‘초등3’을 제외한 다른 방 두 곳은 4~5평 정도다. 각각 남자 초등·중학생 3명, 여자 초등·고등학생 2명이 생활한다. 지하에는 남자 고등학생 1명이 머문다. 아이들만 모두 11명이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개인 공간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 비좁은 공간에 민감한 사춘기 아이,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이 뒤섞여 지낸다. 중학생 A(14) 군은 “점점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인하는 고등학생 B(21) 양은 “방에서 공부하고 싶을 때 아이들이 자주 들락날락해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위생 ‘적신호’…센터도 포화 상태

개인 위생도 문제다. 기숙사에 별도 시설이 없어 아이들은 2평짜리 화장실에서 샤워한다. 하루에 모두 씻을 수 없어 순번을 정해 2~3일에 한 번씩 차례를 기다리는 식이다. 좁은 공간이라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올 초 코로나19에 확진된 한 아이가 제대로 격리되지 못해 기숙사생 전원이 감염되기도 했다. 당시 격리된 아이들은 수일간 물티슈로 샤워를 대신했다.

방치되는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이 꾸준히 늘지만 부산 등의 대다수 지자체는 전담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바울지역아동센터와 같은 지역아동센터도 한정된 시설과 여건 악화 때문에 더 이상 이들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추가 입주를 받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바울지역아동센터 임겸채 교감은 “1인당 평균 2평도 되지 않는 공간과 열악한 부대시설 때문에 더 이상 아이들을 받지 못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한국 문화·언어 적응 한계

바울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년 전 한국에 왔다. 대부분 북한이탈주민이거나 중국, 베트남계다. 부모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장기간 집을 비우고 일을 하거나, 투병 등의 이유로 아이들을 이곳에 맡긴다.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다문화가정 청소년과 달리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편성하는 한국어 교육 외에는 별다른 학습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어 교육이 부족하니 수학이나 영어 등 다른 교과목 진도를 따라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기업 장학 사업 등에 선정돼야 겨우 학원에 다닐 수 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아이들의 적응을 막는다. 일부 주민이 한국어가 어눌한 아이들에게 괜히 시끄럽다고 소리치는가 하면 어떤 상인은 코로나19 때 매출이 줄자 센터를 겨냥해 “터가 좋지 않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수영구 글로벌국제학교 오세련 교장은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부모가 대부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영구 구성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자체와 교육기관, 시민단체 등이 함께 적응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이란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한국인과 재혼한 이민자가 본국에서 데려오거나, 외국인과 결혼한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입국한 뒤 데려온 자녀다. 국제 결혼·북한이탈주민이 증가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달리 언어·문화적 차이 때문에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손희문기자 moonsla@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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