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영하 50도
기온이 영하 50도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러시아 한 매체의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막 끓인 라면을 포크로 집어 올리자 곧바로 면과 포크가 공중에서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중국에선 끓는 물을 공중에 뿌리는 순간 얼음으로 변하는 모습이 중계되기도 했다. 실제로 기업에서 참치 등 식재료를 초고속 냉동시킬 때 이용하는 온도가 영하 50도라고 한다.
요 며칠 미국이 난리다. 연일 강추위로 수십 명이 숨졌다.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주를 비롯한 북서부에선 체감온도가 영하 50도를 밑돌았다. 기상 당국은 “생명을 위협하는 추위”라고 경고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를 떠올리게 된다. 그 높은 ‘자유의 여신상’조차 얼음에 파묻힐 정도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다는, 지구 종말을 예시한 영화다. 영하 50도의 미국은 ‘투모로우’의 예시가 조만간 현실화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던져 준다.
그런데 실상 영하 50도의 추위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일리노이주 등 북미 지역에서는 2014, 2017, 2019년 겨울에도 체감온도가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그래서인지 영하 50도 혹한에도 미국에선 ‘이상 기후’나 ‘기상 이변’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영하 50도에도 살아갈 사람은 살아간다. 러시아 시베리아에 오이먀콘 마을이 있다. 500명 정도 주민이 있는데, 영하 50도쯤은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로 여긴단다. 1933년 영하 67.7도를 기록했고 최근에도 온도계가 영하 67도를 가리켰다고 하니 그다지 지나친 과장은 아님을 알겠다. 실제로 이 마을 아이들은 영하 50도에도 어김없이 학교에 간다고 한다.
추세를 보면 영하 50도가 우리와 전혀 무관하다고 여길 수는 없을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심상치 않다. 삼한사온은 옛말이 됐고, 영하 20도는 심심찮게 경험한다. 부산은 조금 비켜나 있는 듯하지만, 이번 겨울 수도권과 경북, 강원도 일원에 닥친 한파가 그렇다.
지구촌 곳곳에서 장기화하고 반복되는 한파에 대해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둥 “지구가 현재 간빙기에서 빙하기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둥 말이 많다. 여하튼 당장에 사람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혹독한 빙하기를 견뎌 낸 먼 조상의 유전자가 지금 우리 몸속에도 분명 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