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시의회 인사권 놓고 얼굴 붉히다 하루 만에 ‘회군’
의회사무국장 자체 승진 방침에
시 “인력·시설 지원 없다” 발끈
국회의원 중재로 찜찜한 철회
“시장 4급, 의장 5급 인사” 봉합
경남 통영시와 시의회가 의회사무국 인사권을 놓고 한바탕 촌극을 벌였다. 의회의 자체 승진 인사 예고에 발끈한 통영시가 인력·시설·업무 지원을 중단하고 파견인력까지 복귀시켰다 하루 만에 철회했다. 협치가 사라진 감정적 대응으로 행정력을 낭비했다는 비판과 함께 알맹이 빠진 ‘반쪽 인사권’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영시는 지난 27일 시의회로 보낸 공문에서 작년 12월 17일 체결한 ‘인사운영 업무 협약’을 12월 31일 자로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의회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자체 인사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개정 지방자치법에 따라 의회사무국 직원 인사권이 시장에서 의장으로 이양됐다. 당시 업무 협약은 직원 수가 적고 자체 예산이 없는 기초의회 인사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였다. 인사교류, 기구·정원 관리 협조, 후생복지사업 통합운영 등 예산과 인력, 시설, 복지분야 지원방안이 담겼다.
시의회는 이를 토대로 2023년 상반기 정기인사 때 의회사무국장(4급), 전문위원(5급), 의정팀장(6급)에 대한 승진 인사를 준비했다. 반면 시는 승진은 관례대로 통영시 정기인사에 포함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가뜩이나 인사 적체가 심각한 상황에 소수인 의회사무국이 자체 인사를 하면 다수의 승진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효율적인 인력 배치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장이 집행부를 포함한 전체 공무원 중 승진자를 결정해 사무국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통영시 공무원 1061명 중 의회사무국 소속은 24명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의장에게 부여된 인사권을 포기하라는 의미인 탓에 시의회도 물러서지 않았다. 양측 수장 간 담판에도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자 시가 꺼낸 카드가 협약 종료다.
시는 앞으로 사무국에서 필요한 인력을 비롯해 직장 어린이집, 구내식당, 종합건강검진비 지원, 직장상조회 운영, 청사·물품관리, 전산시스템, 보수지급 업무마저 의회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기에 추가 인사발령을 통해 의회에 파견했던 공무직 3명과 청원경찰 1명을 전원 집행부로 복귀시켰다.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은 엉뚱한 곳에서 의외로 싱겁게 일단락됐다. 하루 뒤, 고 박명용 조흥저축은행 회장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점식 국회의원 중재로 천영기 시장과 김미옥 의장이 인사운영에 합의했다. 국회의원과 시장, 의장 모두 국민의힘 소속인데, 공천권을 쥔 당협위원장이 나서자 꿈쩍 않던 두 사람도 한 발씩 물러섰다. 합의에 따라 4급 사무국장 승진은 시장이, 이후 발생하는 5급 이하 인사권은 의장이 행사하기로 했다.
덕분에 앞서 공언한 협약 종료와 공무직 복귀는 없던 일이 됐다. 통영시 관계자는 “사무국에서 아직 공문을 접수하지 않은 상태라 반송하거나 폐기하면 자동으로 효력이 사라진다”고 귀띔했다. 극적인 타협으로 의회가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공직사회에선 못내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공무원은 “시장과 의장 모두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지만, 대응이 지나쳤다. 갈등이 있을 순 있지만, 이렇게까지 대립할 사안은 아니었다. 시민들 눈엔 한심한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인사권을 뒷받침할 ‘예산편성권’과 ‘조직구성권’은 여전히 집행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진정한 인사권 독립도 기대할 수 없다. 김미옥 의장은 “독립된 기관으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상호 대등한 관계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후속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