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동백꽃처럼 눈이 오면… 소원이 이뤄지겠죠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눈이 오면/이화정 글·그림

이화정 작가의 첫 그림책 <눈이 오면>의 한 장면. 작가는 아이가 거인과 주먹밥을 나눠 먹는 이 장면을 그릴 때 가장 많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현암주니어 제공 이화정 작가의 첫 그림책 <눈이 오면>의 한 장면. 작가는 아이가 거인과 주먹밥을 나눠 먹는 이 장면을 그릴 때 가장 많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현암주니어 제공

흰여울문화마을의 바다가 그림책으로 들어왔다. 겨울을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의 파도를 품고.

<눈이 오면>은 이화정 작가가 창작한 첫 그림책이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이 작가는 부산의 ‘창작 공동체A’에서 그림책을 공부했다. “일러스트 작업을 했는데 제가 만든 결과물을 모아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림책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 작가는 그림책 모임 동료들과 지역에 살고 있는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그림책 배경 부산 흰여울문화마을

영도 봉래산 ‘장사 거인 전설’ 다뤄

외로운 아이와 거인의 특별한 만남

“밥 나누는 선한 마음, 거인 움직여”

“세상 끝 같은 흰여울 바다 표현해”

‘헛헛한 세상 데우는 온기’ 같은 책


이화정 작가의 첫 그림책 <눈이 오면> 표지. 현암주니어 제공 이화정 작가의 첫 그림책 <눈이 오면> 표지. 현암주니어 제공

그림책의 배경은 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이다. 이 작가는 “흰여울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겨울이었는데, 그때 이미지가 이야기의 시작점이 됐다”고 했다. 주인공 아이는 흰여울마을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해녀인 할머니가 아침에 바다로 일하러 나가면 아이는 혼자 남는다. 같이 놀아주는 강아지가 있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자주 찬 바람이 분다.

이 작가는 마음이 헛헛한 아이를 위해 특별한 만남을 준비했다. “영도 ‘장사 거인 전설’을 가져왔어요.” 작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던 거인이 마을에 나타난 괴물을 물리치고 죽은 뒤 봉래산 큰 바위가 됐다는 전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책에서 아이는 할머니를 찾아 바닷가에 갔다가 ‘준비해 둔 주먹밥을 빨리 안 먹으면 산에 사는 거인이 가져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얼른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벌써’ 주먹밥 일부를 먹어버린 거인을 만난다. “아이는 배고픈 거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남은 주먹밥도 나눠줘요. 그 선한 마음이 옛 전설처럼 거인을 움직이는 거죠.”

아이는 거인과 계속 밥을 나눠 먹는다. 혼자 먹는 것보다 같이 먹으니 밥도 더 맛있다. 또 아이의 마음에 불던 바람도 따뜻해졌다. 거인은 자신의 보물인 흰 동백나무를 아이에게 보여주며 꽃이 피면 제일 먼저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눈이 오면 엄마가 온다.’ 아이는 할머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부산은 ‘겨울이 되어도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매일 밤 눈을 기다리며 잠드는 아이와 고마운 아이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거인. 간절한 두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 밤 눈이 내린다.

이 작가는 “집에 돌아오는 엄마를 맞으러 아이가 집을 나서는 장면에서 눈과 함께 흰 동백꽃이 어우러져 있다”고 설명했다. “눈이어도 좋고 동백이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는 아이와 엄마가 만나는 장면에는 봉래산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거인의 모습을 살짝 숨겨뒀다.

<눈이 오면>에는 여름부터 겨울까지 세 계절이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빛 표현에 있어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만 하루 동안의 변화를 담았다. “아이와 거인이 만날 때를 12시 정오로 잡았어요. 하루를 못 봐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계절이 세 번 바뀔 정도로 오랜 시간 기다림의 감정이 이어진다는 의미죠.” 이 작가는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보다가 ‘어 계절이 바뀌었네’하고 알아차리면 좋겠다고 했다.

이화정 그림책 <눈이 오면> 중 본문 이미지. 현암주니어 제공 이화정 그림책 <눈이 오면> 중 본문 이미지. 현암주니어 제공

작가는 그림에서 바다 묘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울산에도 바다가 있고 부산에도 여러 바다가 있지만, 바다마다 느낌이 달라요. 흰여울마을에서 보는 바다는 세상의 끝 같은 느낌이 있어요. 시야에 온통 바다만 들어와서 수평선이 곡선으로 휘어지는 듯 보이더군요.”

이 작가는 그림책 속표지에 두 개의 바다 모습을 그려 넣었다. “앞쪽은 흰여울마을의 여름, 뒤쪽은 겨울 바다 모습이에요.” 이야기가 시작되는 여름 바다는 엄마도 친구도 없이, 그저 잔잔하기만 하던 아이의 마음을 닮았다. 눈이 내리는 겨울 바다는 엄마가 돌아온 뒤 기쁨으로 파도치는 아이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아이 주변에서 노는 고양이들을 통해서는 가족의 의미를 전달하려 했다. “엄마·아빠·아기 고양이 세 마리가 늘 함께 있어요. 아기 고양이 혼자 있는 것 같은 장면에서도 자세히 보면 부모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작가는 <눈이 오면>이 그림책 편집자의 표현처럼 ‘텅 빈 골목에 부는 바람처럼 애잔하고 아랫목에 넣어 둔 밥공기처럼 따듯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좋겠다고 했다. 어린 시절 디즈니 그림책을 보며 자랐다는 작가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보고 자랐다면 어땠을까를 종종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작가와 지역이 함께 커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음에는 캐릭터가 와글와글하는 그림책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화정 글·그림/현암주니어/50쪽/1만 5000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