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잊지 않아 모름지기 돌아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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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지금 정치는 ‘국민’이라는 허상에 매몰
아전인수식 해석과 극단의 편견 난무
문단 역시 문학적 비전보다 겉모습만 추구
새내기 때 첫 시작의 마음가짐 되새겨야

한파가 절정이던 주말 저녁 부산역 부근에 마련한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이지만 ‘페친’으로 10여 년 동안 서로 교류했던 지인이 문학상을 받는 자리인지라 발걸음은 더욱 가벼웠다. 행사 막바지 무렵 그는 다소 흥분되지만 경쾌한 목소리로 깔끔하게 수상 소감을 마쳤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처럼, 어제도 만나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친구처럼, 자연스러운 만남에 수다도 즐거웠다. 그는 시인의 꿈을 남몰래 키웠으나 그리 내색은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다만 조용히 준비하면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을 써 왔던 시인이었다. 그리하여 모 잡지의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학의 품으로 들어왔다.

직장이나 성향, 혹은 성격이 달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합류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이를 사후(事後)에 근거한 환원주의의 해석이라 비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서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자신만의 소신과 생활환경만으로 각자 삶을 영위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동아리를 이루거나 지향점을 나누는 장(場)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인 중요도나 영향의 정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어떤 것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끌어올리거나 공동의 비전을 다양한 방법으로 키우게 된다.


시인이 된 지인은 ‘시인’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이미 문학의 장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국민이나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기존 문학사회의 대문을 열고 들어온 셈이다. 새로운 구성원에게 보내는 박수는, 단지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늘어난 데서 생겨나는 반가움의 표시라기보다는, 오히려 낯선 이를 맞이하면서 차차 동화되어 갈 자신들의 또 다른 얼굴을 다시금 본 데서 생기는 기쁨의 표시에 가깝다. 다시 말해 타자의 진입으로 타자의 속성이 자신들의 동아리에 융합되는 순간부터 동일화에 착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일화는 구성원들의 유형화된 모방심리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처럼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를 욕망하기는 하지만, 실은 자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성향과 습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지근거리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대개 가깝거나 비슷한 동료 혹은 직업군에 속한 존재들이지만, 저마다 지향하는 목표나 가치가 엇비슷하기에 늘 모방심리가 던지는 낚시 바늘에서 안전하지 않다. 욕망은 모방을 낳고, 모방은 경쟁을 불러온다.

정치는 사람들의 욕망과 모방과 경쟁 심리를 가장 극적으로 재현하는 장이다. 그곳에는 대표자들의 ‘환담’이 훈훈한 뉴스거리로 송출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정적’을 향한 사형 언도를 지시하는 발화가 난자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모든 언쟁이나 정치적 실천이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여건에 따라 시시때때로 카멜레온처럼 의미를 달리하는 ‘국민’이나 ‘국민 정서’는 사실 허깨비 놀음이 가져다주는 허상이라는 사실은 정치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토록 ‘국민’을 입에 올리면서도 아직도 누구 하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일부’ 국민의 눈초리에 벗어날까 봐 사정 당국은 수사를 빌미로 꼬리를 자르거나 압수수색을 하는 등 요란을 떨고 있다.

‘정치권’이라는 사회에서 자행되는 몰상식적이면서 반국민적인 정서는 문단이라고 해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문단 정치’란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되는지 생각해 봐도 될 것이다. 창작은 뒷전이고 감투를 둘러싼 이전투구와 돌려먹기식의 수상자 선정, 그리고 작품집 발간을 미끼로 금전을 요구하는 등의 행태가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간이기에 눈앞의 이익이 저 멀리 펼쳐져 있는 두루뭉술한 문학적 비전보다 분명해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외관과 모양새에만 정신이 쏠리다 보면 애초 마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 가기 십상이다. 경쟁이 가져다준 욕망의 일그러진 흉터요 생채기다.

바야흐로 새해를 장식할 문단 새내기들의 얼굴이 곧 신문이나 그 밖의 매체를 장식하게 된다. 모름지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스스로 헤아려 잘 모르는 부분을 어떤 의미로 확정하거나 단정 짓는 등 자기 확신에 빠져들어 함부로 실천에 옮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심(民心)은 위정자들이 곧잘 이용하는 국민으로, 문심(文心)은 ‘문단 정치꾼’들이 자신들의 행태를 변호하는 얄팍한 문단 활동이나 수상 이력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모름을 지켜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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