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핑퐁의 계절
“유연성과 찰나의 스포츠.” 탁구인들은 탁구를 이렇게 표현한다. 여기에 숨은 의미가 만만찮다. 통통 튀는 경쾌한 공 소리, 스피드 있는 움직임, 맞수와의 즐거운 게임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무아의 경지. 생각이 끼어들지 못하니 힘겨운 세상살이 걱정도 잊는단다. 몰입과 집중은 가장 큰 심리적 쾌락인데 이를 탁구의 매력으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신체 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운동이다. 그래서 탁구는 우리나라 생활체육 중에서도 인기가 매우 높다. 실내에 작은 공간만 있어도 게임이 가능해 겨울철 스포츠로도 제격이다.
탁구 예찬은 끝이 없겠으나, 그 정점은 ‘평화의 스포츠’에 닿는다. 엄혹한 냉전 시절, 탁구를 매개로 한 ‘핑퐁 외교’가 철의 장벽을 허물고 미국과 중국을 화해로 이끌었다. 남북한 역시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일팀을 꾸려 평화의 의지를 세계에 알린 역사가 있다. 그래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2023년 새해 벽두, 평화를 꿈꾸게 하는 스포츠로 탁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탁구라는 스포츠가 지닌 의미는 이렇게 크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세계 탁구는 남자는 유럽권, 여자는 동양권으로 양분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남녀 모두 중국이 압도적인 강세다. 한국은 88서울올림픽에서 탁구의 꽃이자 국가적 자존심인 남자단식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금메달은 지금까지 총 28개를 가져간 절대강자 중국을 빼면 한국이 3개로 두 번째다. 하지만 한국 탁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다. 인재가 마르지 않는 중국은 물론이고 오랜 기간 꾸준한 투자로 결실을 거두고 있는 일본, 여전히 강한 독일·싱가포르에 밀린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한국 프로탁구 리그(KTTL)가 지난해 역사적인 출범을 알린 데 이어 올해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 1부 리그인 코리아리그(기업 13개 팀)가 2월까지 펼쳐지고 이후 2부 리그인 내셔널리그(지방자치단체 17개 팀)가 이어진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선수들이 더 경쟁적인 환경에서 많은 경기를 정기적으로 소화할 무대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특히 올 시즌에는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한국거래소가 프로탁구에 뛰어들었다. 부산은 유남규와 현정화 선수 등을 배출한 명실상부 탁구의 고장이다. 유남규 감독을 영입한 한국거래소가 그 기운을 받아 한국 탁구 부흥의 마중물 역할을 다해 주길 기대해 본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