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살기 좋은, 서로 다리가 되는, 진정한 부산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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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개인·지역·국가 새해맞이 결의 필요
작심삼일일지라도 새 각오 다져야
부산, 엑스포 유치가 재도약 발판
20년 만에 바뀔 도시 슬로건도 기대
노동·교육·연금 개혁 앞둔 윤 정부
균형발전으로 난제 풀어나가야

부산상공회의소 신년 인사회가 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장인화 부산상의 회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 지역 경제계와 정관계 주요 인사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년 만에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상공회의소 신년 인사회가 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장인화 부산상의 회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 지역 경제계와 정관계 주요 인사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년 만에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연말 도서관에서 빌린 대여섯 권의 책을 뒤적이다 연시를 맞았다. 문득 새해 경구로 삼아도 좋겠다는 글을 발견한 것은 망외의 소득이었다. 취모용료급수마(吹毛用了急須磨). ‘털 한 올을 불어 사용했어도 급히 갈아 두어야 하리’라는 뜻으로, 불교 임제종 시조인 임제의현의 임종게에 나오는 구절이다. 머리카락을 칼날에 갖다 대고 훅 불기만 해도 끊어질 정도로 예리한 취모검이라도 털 한 올을 불어 사용한 뒤에는 급히 갈아 둘 정도로 부지런히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유교의 사서 중 하나인 〈대학〉을 강의한 책에서 불교의 시퍼런 선기(禪氣)가 뚝뚝 묻어나는 시를 만나니 더 신선했다. 계묘년 독서 목록에 유불도 혹은 유불선을 넣은 것은 꾸준히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회복탄력성 혹은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단어의 영향이 컸다. 회복력은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인데,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효율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 〈회복력 시대〉를 지난 11월 출간해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 있어 동양의 고전인 유불도가 발밑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란 기대에서 시작한 독서였다.


‘털 한 올’은 강조 어법에 많이 등장한 말이다. 털끝은 물론이고 호말(毫末), 일호(一毫), 호리(毫釐), 추호(秋毫) 등이 그렇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한때 정치인 사이에서 유행하던 신년 휘호(揮毫)는 붓글씨 문화가 쇠퇴하면서 털끝만큼도 찾기 어려운 세태가 되었다. 자리의 오른쪽에 놓인 쇠붙이에 새긴 글이라는 좌우명(座右銘)도 스마트폰의 캘린더 앱이 대체하는 시대다. 하지만 작심삼일일지라도 새해를 맞으면 마음속 결의 하나를 다지는 것은 장삼이사들의 변치 않는 통과의례일 터이다.

지역이라고 해서 새해 각오가 없을 수 없다. 부산은 무엇보다 올해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의 해를 맞았다. 4월 국제박람회기구(BIE)의 부산 현지 실사, 6월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PT), 11월 5차 경쟁 PT와 BIE 170개 회원국 최종 투표의 시간이 예정돼 있다. 투표 결과 엑스포 유치가 확정되면 부산은 대전환·재도약의 기회를 맞게 된다.

부산의 새로운 도시 슬로건도 기대를 더한다. 박형준 부산시정은 ‘다이내믹 부산’을 20년 만에 대체할 새로운 슬로건 선정 작업에 나섰고, 최종 후보 3개를 3일 공개했다.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 ‘Bridge for All, Busan’(모두를 연결하는, 부산) , ‘True Place, Busan’(진정한 도시, 부산). 새 슬로건은 10일까지 온오프라인 투표를 거친 뒤 13일 도시브랜드위원회에서 최종 선정된다.

일단은 ‘다이내믹 부산’만큼 자극적이지는 않다는 게 중평이지만 1만 3000여 명의 시민과 전문가 참여를 거쳐 결정된 만큼 집단지성의 힘을 믿어 볼 일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 뉴욕의 ‘I Love New York’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도 톡톡 튀는 슬로건은 아니다. 이번 후보작들이 부산에 관한 다양한 상상력을 담을 수 있는 개방형이라는 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는 하다.

국가적으로도 올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 이어 2일 신년 인사회, 3일 첫 국무회의에서 잇따라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여기다 중대선거구제까지 언급해 개혁 이슈를 대통령실이 선점한 인상이다. 선거가 없는 올해 국정에 성과를 내야 한다면서도 내년 4월 총선까지 겨냥한 셈이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우리 사회의 이해가 엇갈리는 난제 중의 난제로, 거론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폭발성이 크다. 더욱이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로 다가온 저출산·고령화와 겹쳐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곧 본격화할 정년 연장 논의를 비롯하여 세대와 진영 간의 이중삼중의 갈등이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며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균형발전이야말로 난마처럼 얽힌 국가적 현안을 해결할 주효한 카드다. 다가오는 인구 구조 변화에 맞서려면 탈수도권 집중, 균형발전이 특효약이다. 윤 대통령도 “고등 교육에 대한 권한을 지역으로 과감하게 넘기고, 그 지역의 산업과 연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교육 개혁 없이는 지역 균형발전을 이뤄 내기 어렵고, 또 지역 균형발전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신년사에서 강조한 바 있다.

계묘년 새해에는 털 한 올을 불어 사용한 일까지도 되돌아보고 성찰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수행자 같은 회복력의 자세가 요구된다. 이럴 때 부산은 혼종성 역동성 저항성 단발성에 기반한 화통의 부산미를 짱짱하게 회복할 수 있다. 부산의 새 도시 슬로건처럼 살기 좋은, 서로 다리가 되는, 진정한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해 본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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