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동 ‘고갈비 골목’에서 고등어 굽는 냄새 사라졌다
전성기 때 전문식당 12곳 성업
골목 찾는 서민 발길 줄어들며
원조 ‘할매집’ 2년 전 폐업 신고
남은 한 곳 리모델링 위해 휴업
서구청은 충무동에 특화 거리
1960~90년대 서민들이 즐겨 찾던 부산 중구 ‘고갈비(고등어 갈비) 골목’에서 고등어 굽는 냄새가 사라졌다. 한때 10곳이 넘는 고갈비 전문 가게가 성업했지만,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시민들이 차츰 발길을 돌리는 바람에 사실상 한 곳만 남은 상태다. 부산의 향토 음식인 고갈비를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로 인근 지자체에서 새로운 거리를 만들기도 했지만, 정작 원조 골목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지난 8일 오후 중구 광복동 옛 미화당백화점(현재 ABC마트) 뒷골목. 고갈비 전문점이 몰려 ‘고갈비 골목’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고갈비 간판을 단 가게 두 곳이 있지만 영업은 하지 않고 있었다. 장사를 오랫동안 하지 않은 듯 가게 안에는 식탁 위에 쌓인 먼지와 어지럽혀진 집기가 보였다. 주말 저녁 시간대였지만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인근 주차장 관계자는 “‘할매집’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됐고, ‘남마담’도 최근 리모델링을 위해 잠시 영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고갈비는 고등어 배를 갈라 등뼈가 보이도록 펼쳐서 연탄불에 구워 내는 ‘고등어구이’를 말한다. 이곳을 즐겨 찾던 대학생들이 고등어 살점을 젓가락으로 먹다 마지막으로 등뼈에 붙은 살을 갈비처럼 뜯어먹어 고갈비라고 부르게 됐다. 부산에서 전국 대부분의 고등어가 유통되는 덕에 고갈비는 1960~90년대 당시 대학생 등 서민이 쉽게 찾던 안줏거리였다.
고갈비 골목은 당시 부산의 중심가이자 부산 최초의 향토백화점인 미화당백화점 뒤편에 형성됐다. 한때 고갈비 전문 음식점만 12곳에 달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저녁이 되면 좁은 골목길이 고갈비 굽는 냄새로 가득 찼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다양한 먹거리가 생기며 고갈비는 차츰 외면받기 시작했다.
현재 가게는 대부분 없어졌고 사실상 ‘남마담’ 한 곳만 남았다. 1950년대 이 일대에서 가장 먼저 장사를 시작한 ‘할매집’은 결국 2021년 3월 폐업 신고를 했다. 한국전쟁 당시 경주에서 피난 온 한순돌 할머니에 이어 아들 박상하, 며느리 한영진 씨가 2대째 가게를 운영하다 건강 문제로 운영할 사람이 없어 문을 닫았다. 박상하(64) 씨는 “고갈비라는 명칭은 이곳에서 생겼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서민의 먹거리로 손님이 줄을 이었다”며 “어머니의 가업을 이어 가장 오래된 고갈비 가게를 계속 운영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 지금도 안타깝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까지 운영되던 남마담은 이달 초 잠시 문을 닫았다. 이곳을 운영하던 사장이 영업권을 넘겨 새 사업자가 리모델링 이후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남마담 관계자는 “건물 주인 일가가 직접 장사하겠다고 해서 영업권을 넘겨줬다. 이른 시일 에 다시 문을 여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동래구에 거주하는 김영태(68) 씨는 “배고픈 시절 고갈비 안주로 친구들과 함께 막걸리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 거의 다 없어져서 아쉽다”고 말했다.
주경업 부산민문화연구원 대표는 "한국전쟁 직후 좁은 골목에 판잣집이 40~50채 정도 들어설 정도로 빽빽했던 공간이었는데 이후에 대학생들이 시계를 맡기고 막걸리와 소주를 마실 정도로 고갈비 가게들이 성업했다"며 "고갈비는 돼지갈비 흉내를 낸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으로 부산의 아픈 역사를 가진 한 단면이다"고 말했다.
한편, 인근 지자체에선 추억의 향토 음식을 되살리기 위해 2017년 고갈비 특화 거리를 새로 만들었다. 서구청은 국내 최대 고등어 산지 위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이 서구에 있는 것을 고려해 충무동 골목시장 사거리에 고갈비 특화 거리를 열었다. 골목시장 사거리에 있는 일명 ‘파전골목’에 고갈비전문 음식점 9곳 등 총 12개 업소를 열어 고갈비 식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글·사진=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