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속 수도권 지하철… “그거 ‘부산 도시철도’입니다”
드라마 속 옥외간판도 금곡역 인근
‘검은태양’ ‘파친코’ ‘옥수역 귀신’ 등
코로나 이후 지하철 장면 촬영 급증
부산교통공사 적극 협조도 한몫
#1. 경기도 ‘산포시 당미역’에 도착한 염창희(이민기 분). 승강장에서 누나 염기정(이엘 분)과 동생 염미정(김지원 분)을 보고 놀란다. 삼 남매는 서울로 가는 지하철을 나란히 서서 기다린다. 여기는 사실 부산 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 내부. 평소 삼 남매가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긴 여정을 떠나는 장면도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열차 안에서 촬영했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 서울역으로 간 국정원 요원 한지혁(남궁민 분). 전광판을 본 뒤 공항철도를 향해 냅다 뛴다. 다른 요원들을 따돌리고 도착한 승강장. 역명은 ‘서울역’이라 표시돼 있지만, 부산 시민에게 익숙한 ‘주황색’이 곳곳에 보인다. 실제 장소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신장림역. 지하철에 올라탄 한지혁이 해커와 대화하는 장면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열차 안에서 찍었다. (MBC 드라마 ‘검은태양’)
2022년과 2021년을 대표한 두 ‘K콘텐츠’에 부산 도시철도 시설이 등장한 장면들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가상의 공간인 ‘경기도 산포시 당미역 승강장’과 ‘서울을 오가는 지하철’로 둔갑했다. ‘검은태양’에서는 주인공이 국정원 요원들을 피해 올라타는 ‘서울역 공항철도’로 나온다.
11일 부산영상위원회에 따르면 두 작품은 부산에서 오직 지하철 장면만 촬영했다. 바다, 고층 건물, 원도심 등 다른 로케이션 없이 도시철도 촬영만 진행한 셈이다. 2021년 방영한 tvN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와 올해 방송 예정인 ENA ‘종이달’도 부산에서는 지하철 장면만 찍은 것으로 파악된다.
부산 도시철도 촬영은 코로나19 유행 기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영상위는 ‘부산 지하철 시설 촬영 지원 건수’가 2018년 6건, 2019년 4건에서 2020년 8건, 2021년 26건, 2022년 8건이 됐다고 밝혔다. 2018~2019년은 총 10건 중 단편·독립영화 촬영이 40%였는데,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부턴 ‘브로커’, ‘파친코’, ‘그리드’ 등 장편 영화와 OTT 드라마 촬영 건수도 크게 늘었다.
OTT 시장 확대로 영화·드라마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지하철 촬영 수요도 늘어난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수도권 지하철은 운영 주체도 다르고 방역 문제 등이 겹쳐 촬영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영상위 박준우 촬영지원팀장은 “코로나19 이후 부산이 지하철 장면 촬영지로 입소문이 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도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제작사가 지하철 촬영만 따로 문의했다”고 밝혔다.
부산교통공사가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부산 도시철도는 세계적인 작품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영화 ‘브로커’는 사상역과 부산 2호선 열차, ‘헌트’는 부산진역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이 배경인 ‘옥수역 귀신’도 부산 동래역, 강서구청역 등에서 찍었다.
부산 도시철도뿐 아니라 역 인근도 중요한 장면으로 활용됐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란 문구가 적힌 교회 옥외 간판이 자주 나오는데, 부산 도시철도 2호선 금곡역에서 인근 건물을 촬영한 뒤 CG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드라마 ‘파친코’에서는 주인공 ‘솔로몬’이 도쿄 거리에서 비를 맞고 춤추는 장면을 센텀시티역 입구에서 촬영했다.
부산교통공사는 부산진역 ‘측선’ 촬영을 먼저 제안하며 더 많은 작품을 유치하기도 했다. 측선은 철도에서 열차 운행에는 사용하지 않는 선로로 열차를 재편성하거나 화물을 싣거나 내릴 때 사용되는 공간이다.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즌 2와 3뿐 아니라 JTBC ‘시지프스’, tvN ‘루카 : 더 비기닝’, 영화 ‘승부’와 ‘옥수역 귀신’ 등을 이곳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부산 영화·영상업계는 부산 도시철도 촬영 열기가 부산지역 로케이션 촬영 확대, 촬영 스태프 유입에 따른 지역 상권 활성화 등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고객홍보실 강다현 대리는 “부산이 영화·영상도시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친근한 대중문화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도시철도를 알리기 위해 촬영에 협조했다”며 “주로 새벽에 촬영을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임시 열차를 배정해 시민 불편이 없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촬영 유치로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다”며 “앞으로도 작품 촬영을 최대한 허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