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광장 건설로 근대의 열린 도시가 됐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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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만화경/손세관

1874년 화가 존 오코너가 그린 ‘템스강 둑길’로 옛것과 새것이 교묘하게 뒤섞인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잘 보여준다. 런던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도서출판 집 제공 1874년 화가 존 오코너가 그린 ‘템스강 둑길’로 옛것과 새것이 교묘하게 뒤섞인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잘 보여준다. 런던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도서출판 집 제공

앙리 4세·루이 14세·오스만 남작

튀일리 정원·가로수 거리 등 조성


런던, 새것과 옛것 공존하는 도시

중국 카이펑, 동양 도시 그림의 전범


그림·지도로 15개 도시 문명 비교




<도시의 만화경>은 도시를 그린 지도와 그림을 통해 세계 15개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건축과 도시를 연구하는 손세관 중앙대 명예교수가 썼다. 15개 도시는 시에나 카이펑 피렌체 베네치아 암스테르담 쑤저우 이스파한 파리 로마 런던 빈 베이징 교토 서울 뉴욕이다. “동서양의 도시 문명을 비교하면서 알 수 있게 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과연 좋은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바란다는 게 저자의 숨은 의도다.

프랑스 파리는 ‘빛나는 도시’다. 역사상 최초의 근대도시이지만 아직 1731년만 해도 루소가 더럽고 악취 나는 도시라고 불렀다. 17세기 초반에서 19세기까지, 300년간 드라마 같은 도시 개조를 이뤄내고 있는 중이었다. 파리를 근대도시로 만든 공은 3명에게 있다. 앙리 4세, 그의 손자 루이 14세, 파리 지사였던 오스만 남작이다. 이들은 광장을 만들어 중세의 닫힌 도시를 근대의 열린 도시로 변모시켰다. 앙리 4세 때 퐁뇌프 다리가, 루이 14세 때 유럽 최초의 공원으로 치는 튀일리 정원이 만들어졌다. 오스만 남작은 도심의 낡은 집들을 대대적으로 부순 다음 가로수가 있는 ‘불바르의 도시’로 만들면서 파리를 두 배로 키웠다. 파리가 세계 수도가 된 것은 도시 개혁가들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도, 프랑스 혁명을 이뤄낸 그들의 역사적 성취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파리가 독재적 파괴를 통해 길을 뚫었다면 런던은 민주적 타협을 통해 길을 냈다. 새것과 옛것, 건설과 보존, 신기술과 골동품이 공존하는 곳이 런던이다. 1860년 철도가 도심으로 밀고 들어왔고, 그걸 이용해 1863년 지하철이 개통됐는데 원활한 소통과 빠른 움직임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1900년 런던은 파리와 필적할 만한 도시가 됐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은 600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다. 빈은 방어를 위한 성곽 도시였다. 뻗어나갈 수 없었다. 1857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벽을 허물고 링슈트라세 개발을 선언한다. 성벽이 둘러쳐졌던 링 모양의 거리, 링슈트라세에 빈을 대표하는 공공건물들이 들어섰다. 빈의 링슈트라세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20세기 초 사회주의 빈 체제 아래서 링슈트라세 외곽을 둘러싸고 미관을 갖춘 서민을 위한 ‘인민 궁전’들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콘크리트 재앙을 막아냈다고 한다.

중국 베이징은 땅 위에 새겨진 우주의 상, 그렇게 그려진 거대한 도상 같은 도시다. 1900년께 세계에서 가장 질서 잡힌 아름다운 도시였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파리 런던 빈 같은 유럽 최고 도시들도 베이징과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등소평 이후 베이징은 마천루가 숲을 이루어 뉴욕 맨해튼처럼 변했다. 예술작품 같은 도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중국 카이펑은 북송의 수도였다. 1120년께 카이펑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청명상하도’다. 궁정화가 장택단의 작품이다. 중국이 국보 중의 국보로 치는 이 그림은 12세기 카이펑의 모습을 한 편의 대서사시처럼 담고 있다. 550명이 넘는 사람, 100채 이상의 누각과 집, 60마리 이상의 가축, 170여 그루의 나무, 25척의 크고 작은 배, 15량의 수레, 8채의 가마가 활기 넘치고 경이롭게 그려져 있다. 명·청대에 이 그림을 모방한 후속작들이 상당히 많이 그려졌다. 역사상 최초의 도시 그림으로 한 시대의 사회와 인간 삶을 증언한 이 그림은 동양에서 도시 그림의 전범이었다.

중국 ‘청명상하도’ 같은 것이 일본의 ‘낙중낙외도’다. 교토를 그린 것인데 일본 안팎에 100점 넘게 있다고 한다. 그중 빼어난 것이 국보 2점으로 ‘우에스키 병풍’과 ‘후나키 병풍’이다. 전자는 금빛 구름이 화면을 뒤덮고 있으며, 후자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 있는 그림이란다. 19세기 초반 교토의 장관을 그린 ‘화락일람도’도 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정조 때 북송의 ‘청명상하도’를 본보기 삼아 한양을 그리게 했다. ‘성시전도(城市全圖)’라는 것인데 기록에 따르면 1717명이 등장하고 56가지 행위가 그려진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걸 정조대에 2번 그렸고, 순조 헌종대에도 계속해서 그렸다고 한다. 정조는 규장각 문신과 검서관에게 ‘성시전도’를 보고 시를 지으라고 명했다. 오늘날 그 시가 13편 남아 전하는데 그림들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한다. 저자는 “짐작건대 일본인 손을 거쳐 일본 모처에 숨어 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말한다. 손세관 지음/도서출판 집/608쪽/3만 2000원.

<도시의 만화경>. 도서출판 집 제공 <도시의 만화경>. 도서출판 집 제공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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