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하의 월드 클래스] 혐오가 비극을 만든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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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일본 사람들은 우릴 바퀴벌레라고 불렀지. 땅 속에 다시 처박아야 된다면서….”

한인 이민 가족을 조명한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드라마로 볼 때 이 대사를 듣는 한국인이라면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힐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재일한국인이 일본인으로부터 받은 차별과 멸시를 이 한 마디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재일한국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해충으로 불렀다는 것은 명백한 혐오이자 인종차별이다. 다음 표현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쟤네들도 인간이었어? 유사 인종 바퀴벌레 아님?” “저 나라 착한 사람은 죽은 사람들 뿐이다” “저것들은 씨를 말려버려야 함”.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뱉은 말이 아니다. 최근 〈부산일보〉의 특정 국가와 다문화가정 관련 기사에 달린 살벌한 글들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에는 혐오의 주체가 한국인들이다. 혐오의 대상은 어린 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에 대한 기사에 “제발 꺼져”라는 댓글이 돌아왔다. 이 밖에도 더 수위가 높은 댓글도 많지만, 지면에 그대로 인용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5월 기자는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렵고, 납세자임에도 지자체 재난지원금 지급에 소외된 난민들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역시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이 가관이었다. 혐오성 댓글은 특정 국가의 사람에게, 또 국내에 체류하는 아시아 국적의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향한다.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이들 외국인은 분명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이고 약자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자국주의를 내세워 한국과 잦은 마찰을 빚는 일은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문제는 혐오성 댓글이 국가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재일한국인을 바퀴벌레로 바라보던 시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객관적인 지표만 고려할 때 한국은 이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기사 댓글마다 혐오성 표현으로 도배되는 현실을 보면 한국이 진정한 ‘월드 클래스’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대부분 한국인은 양식을 갖추고 있는데 목소리가 큰 사람 몇몇이 혐오 댓글을 주도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찌됐든 월드 클래스의 품격은 혐오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데에서 온다고 본다. 언론도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 생산을 경계하고, 거대 포털 사이트도 ‘혐오의 굿판’이 돼 버린 댓글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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