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국인의 명품 사랑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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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매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호황을 주도한 것은 명품 매장 매출 증가라는 것이 백화점 측 설명이다. 3대 명품 브랜드 ‘에루샤(에르메스·루이 비통·샤넬)’ 매장에 개장 전부터 대기 줄을 서는 ‘오픈 런’은 이제 국내에서는 낯익은 풍경이다. 지난해 10월 수도권 한 백화점 에르메스 매장에서는 8년 만에 국내에 신규 매장을 오픈한다는 소식에 개장 이틀 전부터 대기 줄이 생기기도 했다. 대기 줄을 대신 서 주는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다. 한정판이라는 이유로, 보복 소비라는 이름으로, 또는 플렉스를 위한 한국인들의 명품 사랑은 유별나다.

그 중심에 떠오른 2030 MZ세대들의 ‘플렉스 문화’는 결혼 풍속까지 바꿔 놓았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혼할 때 남성이 여성에게 명품 백을 선물하는 ‘프러포즈 백’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청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여자 친구에게 샤넬 백을 선물하기 위한 ‘명품 계’까지 생겼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명품이 명품이 된 것은 원래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치품화하면서 거품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 줄까지 서니 콧대가 높아진 업체들은 계속 가격을 올리고 ‘오늘이 제일 싸다’는 심리는 또 대기 줄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시적 소비로 가격이 높아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베블린 효과까지 가세한다. 이쯤 되니 명품 좋아하는 한국인을 글로벌 호구라고 비꼬는 말까지 나온다. 해가 바뀌자 에르메스가 10% 안팎으로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글로벌 복합 위기에도 샤넬과 프라다는 네 번이나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한국인이 세계에서 명품 소비를 가장 많이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모건스탠리는 한국인의 2022년 명품 소비를 전년보다 24% 늘어난 168억 달러(약 20조 9000억 원)로 추산했다. 1인당 325달러(약 40만 4000원)로 중국 55달러와 미국 280달러보다 많다. 이를 놓고 한국인의 과시욕 등 다양한 분석과 반응이 있지만 어쨌든 명품 소비도 하나의 구매력 지표라 생각하면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값 급등으로 결코 집을 살 수 없다는 상실감에 빠진 MZ세대들이 집을 포기하는 대신 명품을 사는 데 저축했던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일부의 분석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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