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디지털자산거래소 본격화가 ‘웃픈’ 이유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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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금융·블록체인팀장

2년 좌고우면에 설립 적기 놓치고선
최근 추진위 발족해 새삼 “본격 추진”
“뜸만 들이다 밥 태웠다” 지적 속출
늦어진 만큼 이제부터라도 속도 내야

지난해 여름이었다. 정확히는 2022년 8월 9일이다. 그날 기자는 ‘디지털자산거래소, 아직도 좌고우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부산일보 바로 이 지면에 게재했다. 디지털자산거래소를 만들겠다던 부산시가 1년 넘도록 거래소 청사진만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산시가 좌고우면하는 동안 부산 거래소에 대한 금융·가상자산 업계의 관심은 차갑게 식어갔다. 당시 기자는 칼럼 말미에 “부산시는 더이상 좌고우면하다 적기(適期)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애타는 마음을 적었다.

다시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뀌었다. 아쉽게도 당시 기자의 애타는 마음이 부산시에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한 것 같다. 지난해 8월 칼럼 이후로도 거래소는 여전히 좌고우면, 지지부진을 반복했다. 9, 10월에 나올 것이라던 사업자 모집 공고는 해를 넘겨도 소식이 없고, 지난 한 해 동안 부산 거래소 설립을 위해 협력한다고 맺은 수많은 업무협약(MOU)는 온데간데없다. 그렇게 2022년을 흘려보내더니, 연말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 추진위원회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거래소 설립을 추진하던 시청 전담부서의 역할 대부분을 추진위로 넘겼다.


부산시는 “이제 추진위도 생긴 만큼 본격적으로 거래소 설립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년 가까운 기간 동안은 마치 ‘본격적’으로 일하지 않았다는 말투다. ‘본격적’인 설립 움직임에 앞서 그저 준비운동 중인 부산시에 무작정 서두르라 재촉했으니, 그 무용한 애태움이 부산시에 전해졌을리 만무하다. 김상민 추진위원장은 거래소 구상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완전히 결정된 것은 없다”며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다시 청사진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부산시의 좌고우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물론 최근 급변하는 디지털자산 시장 환경의 변화를 고려할 때 ‘원점 재검토’를 말하는 추진위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당장 금융당국이 이달 중 발표하기로 한 ‘STO(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에서 STO를 자본시장법 규제 아래 두기로 할 경우(이미 그런 암시는 충분히 넘쳐난다), 기존 부산 거래소의 증권형(STO)·비증권형(가상자산) 거래소 이원화 구상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게 되면 기존 증권 매매를 담당하는 한국거래소가 STO 거래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너무 뜸을 들이다 밥을 태웠다”은 지적이 유독 자주 들린다. 실제로 지난달 부산금융중심지포럼에 참석한 패널들 역시 “오히려 규제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전에 빠르게 거래소를 설립했어야 했다”는 한 패널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부산 거래소가 이미 구체화됐더라면 STO 규제가 부산 거래소를 고려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 거래소가 STO 규제를 고려해 그 모양새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다.

부산 거래소가 STO 매매 기능을 포함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IEO 기능만큼은 가져와야 한다. IEO(Initial Exchange Offering)는 ‘가상자산 상장 전 검증 절차’를 뜻하는 용어로, 증권시장의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개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가상자산 상장은 불법이며, 이를 허용하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대선공약이다. 매매는 민간 거래소가 자유롭게 담당하더라도 상장만큼은 공공성을 띤 기관이 해야 한다.

해외 여러 나라들이 공공 가상자산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최근 정부 주도의 거래소를 연내 출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민간 거래소들이 각자의 플랫폼을 통해 가상자산 매매를 하고, 정부 거래소는 하나의 전산망으로 이를 관리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현지 언론은 “나스닥과 유사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거래소 아래 회원사를 두고 회원사별 플랫폼으로 매매토록 하는 부산 거래소의 구상과도 닮았다. 한국으로 치면 코스피·코스닥 시장과는 별개로 가상자산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은 모두 서울에 있다. 가상자산 시장만큼은 블록체인 특구 부산에 두자는 것도 크게 억지스럽지 않다.

공은 추진위로 넘어갔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많이 늦었다. 그런 만큼 추진위의 책임이 무겁다. 신속하게 방향을 정해 움직여야 한다. 지난 2년 간의 부산시처럼 계획서를 썼다 지우기만 되풀이하진 않길 바란다. 계획서는 첫사랑의 연애편지가 아니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해봐야 그 애타는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시장의 신뢰만 잃을 뿐이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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