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꼬리 자르기
도마뱀은 사람에게 붙잡히거나 천적의 습격을 받으면 재빨리 꼬리를 자른다. 안전하게 도망치기 위해서다. 절체절명의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신체 일부를 자르는 것을 ‘자절 행동’이라고 한다. 여치와 게, 가재도 위기의 순간에 다리를 떼놓고 달아난다.
도마뱀의 자절 행동에서 연유한 말이 ‘꼬리 자르기’다. 이는 가진 계층이나 기관·단체가 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전가하거나 희생양을 만들어 처벌을 피하면서 기득권과 조직을 유지하는 수법이다.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한국어 지식대사전인 ‘우리말샘’에 올라 있을 만큼 만연한 풍조다. 우리말샘은 꼬리 자르기를 ‘구성원의 잘못으로 집단의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집단이 감춘 잘못 따위가 드러나 전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해당 구성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내쫓아 위기를 모면하는 일’로 설명한다.
거악(巨惡)이 연루된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하위 실무자나 중간 간부 같은 이른바 ‘깃털’만 단죄하는 수준에서 봉합돼 의혹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핵심 세력에 근접하지 못한 수사 결과에 국민들은 꼬리 자르기라며 분개하기 일쑤였다. 이생진 시인은 그 심정을 ‘욕지거리-도마뱀’이란 시에서 읊었다. ‘내 손에 남은 도마뱀의 꼬리/그 꼬리에 남은 몇 마디 욕지거리/흙 속에 묻어도 기어나오는 욕지거리/도마뱀은 다른 꼬리가 생겨서 잊고 있을 때도/나는 그 욕지거리가 마음에 걸렸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의 꼬리 자르기 폐단을 없앨 목적으로 도입됐다. 사망 1명 이상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조치 소홀 책임을 물어 징역 1년 이상 중형을 내리도록 한 게다. 최고위층을 엄벌해야 증가하는 산재를 막을 수 있다는 여론이 작용했다.
MZ세대가 상식·공정·정의를 부르짖는 지금도 꼬리 자르기 행태는 여전하다.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지난 13일 용산구청장과 경찰서장 정도의 선에서 죄를 묻고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 윗선은 무혐의로 종결한다는 경찰 발표가 나오자 꼬리 자르기 논란이 거세다. 유가족은 물론 국민 다수가 납득하기 힘든 결과인 까닭이다. 봐주기 수사로는 사고 재발 방지대책 마련과 경각심 고취는 요원하다. 이어질 검찰 수사에선 확실한 책임을 규명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