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강 해이’ 은행권, 금융서비스 초심 회복해야
고금리 속 지난해 내부 횡령·배임 급증
영업시간 등 국민 위한 공적 역할 중요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 ‘이자 장사’로 역대급의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은행권 내부에 지난해 횡령·배임 액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17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은행에서 발생한 횡령·배임액은 854억 원으로, 전년도의 115억 원보다 무려 7배 이상 크게 늘었다. 하지만 환수한 횡령액은 10억 원에도 못 미치는 전체 1.4%에 불과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이자 장사에는 한 치 배려도 없는 깐깐한 은행이 정작 내부통제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던 것이다. 이러니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은행권의 심각한 기강 해이에 대한 우려는 이미 횡령·배임액 규모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횡령·배임액은 지난 3년간 뚜렷한 급증세로, 규모도 대형화 추세다. 횡령액의 경우 2020년 8억 원에서 지난해엔 724억 원으로 90배 폭증했고, 배임액도 2020년 9억 원에서 작년엔 129억 원으로 14배 이상 늘었다. 전국 단위의 은행만이 아니라 지역 은행도 마찬가지다. 부산은행에서도 지난해 약 15억 원의 내부 횡령 사건이 적발됐다. 전국·지역 은행 가릴 것 없이 내부 횡령·배임이 횡행하고 있는데도 내부통제 강화와 사후 환수 조치는 안일하기 짝이 없다. 횡령액의 1% 남짓한 환수액이 그 단적인 예다.
지금 은행권을 향한 국민의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 은행권이 그 이유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예대금리 차이로 엄청난 수익을 내면서 막대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다른 대부분의 업종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은행권만 거의 홀로 유례없는 호황이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전으로 영업시간 복귀에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짧은 영업시간 탓에 은행에 가려면 연차 휴가까지 내야 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마당이다. 은행이 아무리 민간 조직이라고 해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 기관인 이상 은행의 공적 기능이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된다. 1997년 IMF 사태 때 수십조 원의 세금이 투입된 근거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던 은행권이 외부 환경에 의해 형성된 호조건을 자기 잇속만 챙기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다. 국민에겐 조금의 배려도 없으면서 은행 내부적으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면, 이는 국민의 거센 역풍을 자초하는 일이다. 들끓는 여론에 이미 여야 정치권은 물론 금융감독기관 수장까지 나서고 있는 판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16일 “은행 이익의 최소한 3분의 1은 국민 몫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더 주목된다. 은행이 지금의 ‘국민 밉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본연의 초심 회복뿐이다. 국민의 금융서비스 기관으로 최소한의 공적 역할을 다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