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위기의 시대, 탄소중립보다 중요한 것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전쟁, 식량난, 물가상승, 경기침체 등 국제 정세가 현기증이 날 만큼 어지럽게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위기 속에서도 에너지 전환의 시대는 소리 없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미 태양광 에너지의 효율이 화석 연료의 에너지 효율을 넘어섰고, 우리나라 기업들은 애플, 구글,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신재생 에너지로 생산한 제품만 납품하기를 강요받고 있다. 뒤늦게 무서움을 알아차린 우리 기업들은 지금 악전고투 중이다. 에너지 전환 시대로 넘어가는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은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정부가 시급하게 나서야 할 일은 우리 기업이 신재생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하여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RE 100’(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운동)과 탄소중립 같은 압박에서 벗어나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산형 전력망의 확충, 스마트 그리드로의 전면적인 전환 등 국가적인 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중요하다.
재생 에너지 인프라 확충 시급
기업들은 ESG 혁명 동참해야
전문성 가진 리더의 역할 절실
지난 정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생산 설비를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지난 정부가 놓친 부분이 있다.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용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가 아무리 많아도 도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어렵게 생산된 신재생 에너지가 송전망 부족 때문에 산업단지로 제대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현재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의 거대한 태양광 단지에서 생산된 전기가 정작 전기가 필요한 수도권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정부 관계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 문제는 오직 국가만이 해결할 수 있으며 원전 확대냐 탈원전이냐 하는 케케묵은 이슈와는 전혀 무관하다. 어찌 되었건 원전으로 100% 새로운 에너지 세상을 만들지 못할 바에야 OECD 꼴찌 수준인 우리나라의 재생 에너지 생산 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이 전기가 적재적소에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늦어질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해야 할 일을 살펴보기에 앞서, 기업이 기후위기의 주범임을 명확히 하자.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10대 기업’들과 이들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한국전력의 탄소 배출량을 합하면 우리나라 전체 탄소 배출량의 70%에 육박한다. 결국 기업의 배출량을 잡는 것이 기후위기 극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의 배출량을 잡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필자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재정립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기업으로 하여금 기후위기로 황폐화하고 있는 세상을 다시 지속가능한 세상으로 만드는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이미 세상은 우리가 좋건 싫건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환경(Environment), 사회(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딴 ‘ESG 혁명’이다. 우리 기업들이 용기를 내어 새로운 기업 환경에서 살아남는 선택에 하루빨리 과감하게 동참할 것을 주문한다.
개인들에게는 기후위기 해결에 필요한, 좀 더 거대하고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기를 권하고 싶다. 텀블러 사용하기, 자전거와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시민 각자의 각성과 실천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 문제는 결국 시스템을 통째로 뜯어고쳐야 하는 문제이다.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중국을 보자.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말 18개 성의 당서기들을 대부분 이공계 전문가로 교체하였다. 15명의 당서기가 이공계 대학을 나왔고, 이들 중 13명이 석·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기술자 출신이다. 덩샤오핑·후진타오·시진핑 주석 모두 이공계 출신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국회의원 중 이공계 출신이 20년 전에 5% 수준이었는데 지금에서야 겨우 10% 수준에 도달했다. 이래서야 어찌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ICT 트렌드를 따라잡을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에너지 전환의 핵심을 꿰뚫는 정책들이 입안될 수 있겠는가. 이제는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급변하는 세상에 살아 남느냐 도태되느냐의 문제가 더없이 중요하게 됐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야흐로 과학기술의 세상인 것이다. 전문성을 가진 이공계 리더들의 활약이 빛날 때 진정한 기후위기 극복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