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 부산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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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Busan is Good’ 확장성·개방성 강점
부산 대전환 기폭제 시민 공감 모아야
도시 혁신의 주체로 대학 중요성 부각
첫 지원자 0 학과 ‘벚꽃 엔딩’ 위기감
정부, 지자체 주도 지방대 육성 추진
똘똘 뭉쳐 젊은이 몰려들 방안 찾아야

부산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도심. 부산일보DB 부산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도심. 부산일보DB

부산시는 2006년 옛 하얄리아 터에 조성될 공원의 이름을 짓기 위해 시민 공모전을 진행했다. 1500건의 응모작 중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기 힘들었다. 시의원, 시민단체 대표, 국어·역사·공원 전문가로 ‘공원명칭심사위원회’를 꾸려 마라톤 회의를 거듭했지만 결정이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군 부대 이름이었던 ‘하얄리아’를 공원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터의 상징성이 있고 초대 사령관이었던 장군이 고향 플로리다주 도시 이름을 따 부대 이름을 정했다는 역사성도 있었다. 인디언어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도 울림이 있고 공원과 잘 어울렸다. 하얄리아도 심사 대상에 올랐으나 미군 잔재를 공원 이름에 남길 수 없다는 일부 위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배제됐다. 결국 ‘부산시민공원’ ‘부산대공원’ ‘너울공원’ ‘부산공원’ ‘부산가온공원’을 놓고 시민 선호도 조사를 벌이는 우여곡절을 거쳐 2011년에야 부산시민공원으로 이름을 확정했다.

도시의 공원 이름 하나 정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도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좌우할 브랜드 슬로건을 정하는 일이야 오죽하겠는가. 네이밍이나 브랜딩만큼 주관적 영역도 없다. 500명이 모이면 의견이 500개다.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정해도 여러 뒷말이 따른다. 부산의 도시 브랜드로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이 선정됐다. 역시나 부산의 특성과 독창성을 담지 못하고 밋밋하다는 의견과 기존 ‘다이내믹 부산’이 좋다는 부정적 반응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4월로 예정된 2030엑스포 현장 실사 일정을 감안하면 속도감 있는 진행이 필요했을 것이고 부산이 처한 상황에서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부산의 대전환을 내건 이 시점에 브랜드 슬로건을 바꿔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왕에 정했으니 앞으로 디자인과 마케팅, 그리고 시민 공감 확산이 중요할 것이다. ‘I♥NY’을 넘어서는 브랜드가 되길 희망해 본다. 시의 설명대로 ‘Busan is Good’이 갖는 확장성과 개방성이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엑스포 하기 좋은 도시 부산’ ‘창업하기 좋은 도시 부산’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 부산’에 대한 기대를 해 본다. 부산은 4년제 14개, 2·3년제 8개로 22개 대학을 갖춘 명실공히 대학 도시다. 그러나 지금 부산의 현실은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가 아니고 ‘대학이 많아 버거운 도시’다. 올해 부산지역 대학에서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학과가 나왔다. 대학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제2 도시 부산에서 지원자 0인 학과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다. 대학은 도시 혁신의 심장이 되지 못하고 도시는 대학을 품지 못하는 도시가 부산이다. 대학이 문을 닫는 도시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교육 개혁의 중심에 지방대 살리기를 둔 것은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다. 교육부는 지역 대학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마련해 지자체의 대학 지원 권한을 늘리고 규제 완화와 집중적 재정 투자로 지역과 대학을 모두 살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5개 시범 지역을 정하고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한다. 정부 움직임을 보면 부산이 그 중심에 설 공산이 크다. 시범 도시와 함께 교육특구로 지정돼 사업을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파견 인력을 포함해 지자체에 RISE 전담 조직을 만들고 교육 기금에서 예산도 전폭 지원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체적 얼개다.

물론 RISE가 지역 대학의 경쟁력 강화로 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반도체학과 증설에서 보듯 수도권 대학 규제 완화라는 이율배반적 정책을 언제든 들고 나올 수 있는 게 지금 정부다. 균형발전을 생각한다면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부터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역대 정부의 지역 대학 육성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지방대혁신역량강화사업(NURI)과 문재인 정부의 지역혁신플랫폼 사업도 지방대를 살리지는 못했다.

정부는 근본적 해결책으로 지자체 권한 대폭 이양을 내놓았다. 이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잘하면 지역 혁신으로 대학도 살고 지역도 살 수 있지만 제대로 못하면 대학도 망하고 지역도 망하고 그 책임도 오롯이 지역이 덮어쓰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시와 대학들이 똘똘 뭉쳐 돌파구를 찾는 게 시급하다. 다 망하게 생겼는데 지역 대학끼리의 경쟁도 무의미하다.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 타령만 할 게 아니다. 수도권 젊은이든, 세계의 젊은이든 부산으로 불러들일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벚꽃 엔딩’이 울려퍼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짜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 부산’이 되면 부산은 산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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